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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2. 2021

좋은 대화가 필요해

말의 힘


아무래도 귀가 예민한 듯 하다. 카페에 앉아있으면 주변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곧잘 들리는데, 가만 보면 참 무의미한 대화가 난무한다. 흔한 경우는 상대방은 전혀 관심도 없는 자기 얘기만 줄창 떠들어대는 장면이다. 상대방이 날리는 영혼 없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같이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나누고 있지 않는 셈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지 싶다. 다른 종류의 듣기 싫은 대화가 내 귀를 파고들 때도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얘기를 거친 표현과 함께 떠드는 사람들이다. 그럴 때면 지구의 소중한 산소가 낭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젠가 한 부부가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남편이 회사의 버릇없는 젊은 직원을 욕하면서 부인에게 그에 동조할 것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부인은 질린 게 역력한 음색으로 겨우겨우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좋은 대화는 생각보다 어렵다. 좋은 대화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대의 언어를 쓰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붕붕이'라고 말하고, 비전문가에게는 '재귀'가 아니라 '반복'라고 말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한데, 이 감각은 생각보다 많은 사고와 배려심을 요구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나의 언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본능을 누르고 상대의 언어를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종의 변환 작업으로, 적절한 소통을 위해 규칙을 맞추는 일이다. 그래서 상대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배려를 뛰어넘어 섬세하고도 전략적인 작업으로도 느껴진다. 이런 정교함이 요구되는 매 장면들이야말로 인간 지성이 극도로 발휘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상대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단어 수준을 넘어서 상대의 맥락을 맞추는 것까지 확장된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은 모를 수 있다.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한번은 대학 병원을 방문하는데, 얼마나 불친절하게 다뤄질지 가기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 직원들은 각오했던 것보다는 친절했다-아니 친절했다기보다는 사무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병원 특유의 불쾌함이 남았는데, 다들 자신의 언어로 나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 병이 (당연히) 어떻고. 이 다음에 절차는 (아시다시피) 이렇게 진행되고. 이건 (원래부터) 이렇게 하는 거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난 이 병도 처음이고 이 병원도 처음이고 당신도 처음이고 당신이 설명하는 일들도 처음이고 나한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게 없는데.

그들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마다 나는 다시 나의 언어로 질문해야 했다. 그래, 지겹겠다 싶었다. 환자는 구름떼처럼 밀려들고 매번 같은 설명을 해야하는데. 그러나 철저히 몰인격화되어 대화같지 않은 대화를 하는 것은 유쾌하게도, 효율적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종종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절감할 때가 있다. 나를 판단하는 타인의 말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휘돌 때마다 그 힘을 느낀다. 그 무심함에 몸서리 치다가 불현듯 나의 말도 그렇겠다 싶다. 내 생각없는 말들도 언젠가 누군가를 괴롭게 했겠거니 싶다. 

그러니 좋은 대화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또 내가 되어주는 좋은 대화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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