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이 지나다
여름이 끝나갔다. 쭉 빠졌던 몸무게는 엄마가 걱정된다며 보낸 흑염소즙을 먹었더니 일주일만에 다시 훅 늘었다. 머리터럭도 다시 늘고 찢어졌던 살도 어느새 아물었다. 비록 진통제를 계속 먹긴 했지만 허리도 견딜만했다. 긴 터널같은 시간을 지나서 그래도 무언가 돌아오고 있었다. 일도 바빠졌다. 일이 바빠졌다기보다는 일을 바쁘게 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나아졌다. 뇌가 팽팽 돌아가는 느낌이 짜릿했다. 마음 속에서 분명 무언가 살아나고 있었다.
가을의 초입에서 다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픈 걸 모른 채 받았던 전 해의 건강검진보다는 나쁜 얘기가 줄었다. 결과지의 요약란은 이미 요약이 아니게 된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분명 전 해보다 나았다. 그런 게 중요했다.
검진 날 약간의 소동은 있었다. 자궁초음파를 찍다가 기형종 소견을 받았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아 한참을 찾아보곤 또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넋이 나가 결국 울음을 못참고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채 채혈을 했다. 채혈을 하려던 간호사가 내 얼굴을 보고는 놀라서 이유도 모른 채 나를 달랬다. 그렇게 울면 내가 주삿바늘을 아프게 꽂아서 울린 줄 알잖아요. 내가 엄마처럼 달래줘야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차트를 보았다. 내 나이를 확인하고서는 그녀가 멈칫거리는 걸 느꼈다. 민망함에 눈물이 들어갔다. 그래 내가 밖에서 줄줄 울고다니면서 누가 엄마 노릇해주며 달래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 다행히 기형종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에 어울리는 어른이 되었나?
아픈 이후 부쩍 재미없는 어른 같아지긴 했다-돈 걱정, 건강 걱정을 입에 달고 지내니 말이다. 전과 달리, 삶이 버겁게 느껴졌다. 1년 뒤, 5년 뒤, 10년 뒤가 어떤 신나는 계획이 아닌 막연한 두려움으로 차 있어 질식할 것 같았다. 내 삶이 궁금하지 않다. 나에게 남은 인생에 호기심이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그래도 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이 많은데 스스로를 모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사에 열심인 사람이었다.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계단을 서둘러 뛰어내려가는 사람이었고, 집중하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끝장을 보는 사람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복잡한 계획을 세우며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온 몸에 힘을 주고 살다보니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질병을 줍게 되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한거라곤 미련하리만치 모든 것에 진지하게 임한 것밖에 없는데-아 그게 문제인가? 내가 너무 요령이 없었나?
절망의 근본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분노의 대상은 스스로였다.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렸다.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수용해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파서,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스스로는 상상부터 너무 괴로웠다. 나 이렇게 시시한 사람 아닌데. 내가 누군데. 감히. 네가.
그러나 아프고 난 뒤 만난 나는 낯선 나였다. 시시한 사람이었다. 시시한 보통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육체가 무너지니 함께 참 쉽게도 사그라졌다.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무언가 되고 싶어 한다고 믿었지만 사실 내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무엇 하나 특별나게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이, 다정하지도 뛰어나거나 열정적이지도 못한, 열탕도 냉탕도 아닌 미지근한 식은 물 같은 사람. 그 정도였다. 사실 잘하는 게 없는 것보다도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게 더 마음이 쓰였다. 한없는 퇴행과 열정 없음에 난 아프니까, 라고 핑계를 대봐도 그건 마치 늪과 같아서, 그 핑계를 대고 물러서는 순간 더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그러고나니 징징거리는 것도 좀 지겨워졌다. 그만은, 그래도 힘내보고 싶었다. 내 몸도 이만큼 힘을 내는데 내 마음도 거기에 응하고 싶었다. 나는 보통 사람이니까, 사실 늘 보통 사람이었으니까 예전이고 지금이고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도 같았다. 즐거운 것. 행복한 것.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소중한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일상적인 것들.
정말 어른이, 훌륭한 어른이 된다면,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더 아프면 아팠지 이전 만큼 아픈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넘어져도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 다쳐서 아프더라도 하늘이 참 파랗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되어야 함을 안다.
며칠 전 세번째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수술한 지 일년이 넘은 날이었다. 여러모로 졸업 선언을 기대했다. 체감상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처음 수술할 때 의사가 일 년 정도의 회복 기간을 말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내 느낌을 배신했다. 결과는 여름에 받았던 두번째 검사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아직도 약 없이 내 몸을 돌아가게 하려면 더 기다림이 필요했다.
드라마같은 극적인 반전도, 영화같은 산뜻한 결말도 인생에는 없다. 의사는 이번엔 3개월 뒤가 아닌 6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병원 주차장을 나서는데 일 년 전처럼 단풍은 빨갛게 색이 고왔다.
언젠가는 나을 것이다. 그러고나면 또 다른 시련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분명 있긴 할 거다.
그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이 한 덩어리처럼 뒤엉킨 채, 인생은 완벽하게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