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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성심당 없었으면 어쩔 뻔

by Lohengrin

월요일이었던 어제는 오후에 친구 녀석과 둘이서 대전에 내려갔습니다. 대전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녀석의 저녁식사 초대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동창친구 8명이 모이는 모임을 하는데 대전에 있는 친구가 2명입니다. 모일 때마다 주력부대가 있는 서울에서 모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매번 대전에서 올라오는 끈기 있는 친구입니다.


멤버들이 항상 미안해했습니다. 모일 때마다 빠짐없이 올라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모임에 있는 한 녀석의 자녀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멤버들이 다 모였을 때 1년에 한두 번은 대전에서 모여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대전으로 1박 2일 골프를 치러 내려가기도 하고 각자 개별적으로 내려가긴 했습니다만 역시 거리가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내려가는데 소홀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거리로 따지거나 시간으로 따지면 서울서 대전 가는 것이 그리 큰 일은 아닌 듯 보이긴 합니다. KTX나 SRT를 타면 1시간 거리밖에 안 되긴 합니다. 기차 러닝타임이 그렇다는 겁니다. 운전을 해서 간다고 해도 기본은 2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고, KTX를 탄다고 해도 기차역까지 가고 기다리고 하는 시간들을 합치면 기본 2-3시간은 잡아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모임 때마다 올라오는 녀석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이런 미안한 마음에 위안을 삼고자 어제는 대전으로 내려가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올라오자고 의기투합을 했던 것입니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니 정말 1시간밖에 안 걸렸습니다.


대전역에 내려 플랫폼을 걸어 나오는 순간, 생경한 광경이 계속 목격됩니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1/3이 손에 비슷비슷한 종이 쇼핑백을 들고 있는 겁니다. 바로 성심당 빵집의 종이백입니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빵을 사서 간다고?"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전역 한편에 성심당 분점이 있는 이유라고는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에 빵이 들려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도 친구 녀석 만나러 여기 대전에 내려왔다가 시내 본점에 들러 빵을 사기도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줄 서서 빵을 사긴 했지만 대전역 전체 승객들의 절반가까이의 손에 빵이 들려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전역의 성심당 빵봉지 풍광은 친구 녀석 사무실이 있는 용문역까지 가는 길에서나,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서대전사거리나, 2차 수제맥주집을 찾아가는 중앙로역 근처나 매한가지였습니다.


가히 충격적인 거리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치 '트루먼쇼'에서 행인의 역할을 하는 단역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빵의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갖게 합니다.


친구 녀석이 저희들을 롯데백화점 지하에 있는 성심당 케익부띠끄 분점으로 이끕니다. 본점 및 다른 분점들은 매장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야 되는데 이곳은 그나마 줄을 적게 선다는 지역주민의 경험이 빛을 발했습니다. 정말로 백화점 1층에 있는 분점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사람이 많습니다. 그 틈을 헤집고 지하로 내려가니 거기에 줄 서 있는 손님은 앞에 5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일반 빵을 파는 곳은 아니고 딸기시루라는 케이크만 파는 곳입니다. 케이크 가격도 딸기 3단에 43,000원이나 하는 터라 손님이 조금 덜한 듯했습니다.


대전 사는 녀석이 친구들의 숫자에 맞춰 케이크를 주문하고 하나씩 들려줍니다. 친구 잘 둬서 손은 무겁지만 발길은 가볍게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들고 다녔습니다.


숨겨놓은 맛집이라는 곱창구이집을 찾아 소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2차로 가볍게 수제맥주집에 들러 맥주 샘플러 12가지를 시켜 맛을 봤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06분 SRT를 타고 수서로 오기 위해 대전역으로 다시 갔습니다. 대전역 청사를 누비는 성심당 빵집의 종이 쇼핑백 물결은 여전히 넘실 거립니다.

"성심당 없었으면 대전 어쩔 뻔했어?"

대전사람들은 정말 성심당을 업고 다녀야 할 듯합니다. 뭐 대전 경제에 눈곱만큼의 역할일 수 있으나 이 빵의 팬덤은 높이 살 가치가 충분합니다. 여러 브랜드로 확장을 하는 등 사업 다각화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대전을 빵의 도시로 만들 요량인 듯합니다. 응원해마지 않습니다. 성심당 때문에 다른 동네 빵집이 다 문 닫을 판이라고 볼맨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대전하면 한화 이글스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성심당이 먼저 떠오릅니다. 기업이 도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 현상입니다. 그것도 대기업이 아닌 구멍가게로 치부하던 빵집이 말입니다. 일본의 나가사키 카스텔라가 지역을 대표하듯 이제는 성심당이 대전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를 굳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더 성장하고 잘 자리 잡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친구 녀석 덕에 성심당 빵봉지 대열에 합류하는 동질성도 경험했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친구 하나 잘 두면 이렇게 손에 빵이 들려집니다. 감사하고 사랑하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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