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 보라

by Lohengrin

우리는 종종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철학자들도 이 물음 앞에 수천 년을 고민했고, 현대인들 역시 이 정체성의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있는 바로 그 공간을 둘러보라. 당신이 머무는 곳,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당신의 일상은 곧 당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풍경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태어났고, 누구도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주어진다. 인간은 이 두 축 위에 ‘존재’라는 것을 얹어 살아간다. 인생이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공간을 옮겨 다니며 겪는 수많은 경험의 집합이다.


삶이란 마치 큰 무대 위의 연극과 같다. 주어진 배경이 있고, 주어진 시간 안에 배역을 연기해야 한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공간의 내용'이다. 태어난 장소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어떤 사물로 내 공간을 채워갈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곧 '나'를 만들고,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실마리가 된다.

당신의 지금 이 순간을 보라. 서재 책상에 앉아있는가? 책이 꽂힌 선반, 다 쓴 펜, 메모지 위의 흔적들. 그것은 당신의 사유의 깊이와 지적 성장을 위한 열망을 보여주는 징표다. 혹은 사무실 회의실에 앉아있는가? 프로젝트 문서, 커피잔, 동료들과의 대화. 그것은 당신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머무는 공간 속에서 일상과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물은 곧 우리의 인생철학이자 삶의 태도이다. 어떤 사람과 자주 함께 있고, 어떤 물건을 가까이 두며,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는 곧 내 내면의 성향을 외부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사적인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자기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심리적 피난처다. 누군가에겐 숲길 산책이 그럴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카페일 수 있다. 혹은 글을 쓰는 조용한 새벽일 수도 있다.


이러한 공간은 삶의 소음을 거두고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 사색은 정체성을 강화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 이해를 돕는다. 침묵의 공간은 외부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하고, 기억의 공간은 과거의 나를 되새기게 하며, 배움의 공간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간다. 이 세 가지 niche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장시키는 핵심적 기제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 진리를 일찍이 알았다. 묘지 근처에 살며 장례 흉내를 내던 맹자를 위해 시장으로 이사했고, 다시 정진하는 서당 곁으로 세 번째 이사를 감행해 맹자를 길러냈다. 이는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굳이 맹모삼천지교까지 거슬러 갈 필요도 없다. 강남 학원가로 8 학군이 형성되는 것만 봐도 공간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간은 수동적인 배경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격 형성의 도구다. 맹자의 성장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올바른 공간은 사람을 교육하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가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우리가 공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인테리어를 바꾸고, 함께하는 사람을 선택하며,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다. 그 시점이 바로 '나'라는 존재가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살아간다.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내 삶의 서사가 된다. 이 서사를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공간이 이미 나를 대신해 대답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나의 삶은 내가 있는 공간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간은 나의 과거를 저장하고 현재를 구성하며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니 어쩌면 정체성을 찾기 위해 먼 곳까지 떠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작은 공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여기엔 나의 삶이, 그리고 나 자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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