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왜 가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떠나고 싶어 안달일까. ‘일상 탈출’이란 익숙한 말로 포장할 수는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에 대한 설렘이 자리 잡고 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연은 희귀하다.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사실 ‘계획되지 않은 일’과 ‘처음 보는 장면’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이다.
여행은 바로 그 우연을 만나기 위한 움직임이다. 똑같은 동선을 걸어도 낯선 나라에서의 그것은 더 눈부시다. 왜냐면 우리의 오감은 모르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깨어 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불안감은 곧 감각을 깨우고, 그 상태에서 보는 모든 장면은 생생한 감동이 되어 기억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은 행복으로 귀결된다. 예측할 수 없기에 설레고, 계획된 일 외의 순간이 때때로 인생 최고의 장면이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여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해외에서 여권을 잃거나 소매치기를 당한다면, 여행의 감동은 공포와 당황으로 빠르게 치환된다. 그러나 그런 불운조차도 지나고 보면 중요한 깨달음이나 유의점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런 불쾌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사소한 부주의, 기본적인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일들. 그래서 여행의 본질은 여전히 긍정적인 기억의 축적이다.
이번 포르투갈 가족 여행도 그러했다. 리스본과 포르투를 거점으로 열흘간 주변 소도시들을 오가며 충분히 걷고, 먹고, 웃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선명하게 남은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포르투의 모루 언덕에서였다. 석양이 바다 너머로 내려앉던 저녁, 언덕 위엔 해질녘을 감상하러 모인 이들로 가득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한 커플이 청혼을 시작했고, 무대처럼 펼쳐진 석양 앞에서 그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약속했다.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낯선 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축하. 언어도 이름도 몰랐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리스본에서의 일이었다. 숙소 옆에 그렇게 특별한 곳이 있었는지 몰랐다. 4일간 리스본에 머무르며 매일 아침 소도시로 향했고, 밤늦게 돌아와서는 지친 몸을 눕히기 바빴다. 셋째 날 밤, 카스카이스와 신트라를 다녀와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에 발이 멈췄다. 작은 식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라이브 음악. 무작정 노랫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파두 공연이 이루어지는 식당이었다.
파두. 포르투갈의 영혼이라 불리는 음악. 고통, 그리움, 회한,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담은 그 선율은 언어를 초월했다. 작은 식당은 마치 음악의 성소 같았다. 입구 쪽에 10여 석, 안쪽으로 30여 석 남짓. 가수와 두 명의 기타 연주자가 공간을 오가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라이브로 울려 퍼지는 파두는 전율 그 자체였다. 무대라고 하기엔 기타 연주자를 위한 의자 2개가 전부다. 하지만 파두 가수의 노랫소리는 작은 공간이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오직 음악과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사의 내용은 몰랐지만, 그 음색과 분위기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누군가를 보내고, 기다리고, 다시는 못 본다는 슬픔. 가수의 눈빛과 호흡, 몸짓에 실린 감정은 우리를 그 이야기 속으로 데려갔다. 와인 한 잔과 함께한 그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은 마치 짧은 영화처럼 선명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러 맛집 식당을 검색했지만 숙소 앞쪽 골목에 이런 파두 공연 식당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저 우연히, 그러나 필연처럼 마주한 밤. 어쩌면 가장 여행다운 순간이었다.
우연은 그렇게 여행의 본질을 드러낸다. 계획은 필수지만, 기억은 대부분 계획 바깥에서 만들어진다. 모루 언덕에서의 청혼처럼, 골목 끝에서 들려온 파두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 그 낯선 우연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매번 다른 도시, 다른 계절, 다른 풍경 속에서 또 하나의 필연을 마주하기 위해.
여행은 결국, 삶이라는 커다란 서사의 일부다. 그리고 그 안에 조용히 침투해 기억을 흔드는 몇몇 장면들은 대부분 그렇게, 뜻밖의 순간에, 이름 모를 골목과 언덕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라. 그것이 모든 감각을 깨우고, 인생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