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애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섹스를 나누는 것. 이토록 세속적이고도 단순한 조합이 인간의 행복을 대변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삶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복잡한 철학도, 그 이하의 무의미한 반복도 아닌, 결국 이러한 감각과 감정의 총합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본능과 쾌락 추구가 고도화된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본능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저 순간의 감각에만 몰입하며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제시한 두 자아 개념 ―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 ― 는 인간의 행복을 단편이 아닌 서사로서 이해하게 만든다.
‘경험 행복’은 즉각적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의 만족,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느끼는 설렘. 모두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하며 우리의 뇌를 찰나의 기쁨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이 찰나들은 쉽게 흩어진다. 단편적인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의 표면에서 사라지기 쉽고, 강렬했던 감정도 흐릿해진다.
반면, '기억 행복'은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서사 화했는가에 따라 새로운 감정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경험한 것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남기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다채로워진다.
기억 행복은 축적되고, 연속성을 지닌다. 한 번의 여행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아름답게 회상되고, 한 번의 사랑이 이별 후에도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덧입혀진 이야기이고, 해석된 체험이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가 남긴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기억을 꺼내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현재의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 이 자기 순환적 대화 속에서 인간은 존재의 밀도를 쌓아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억 행복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하다. 더 많은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고, 그것을 나와 대화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다.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찍고, 의미 있는 순간을 기록하며, 때때로 그 기억을 꺼내 나 자신과 조용히 마주 앉는 일. 그렇게 우리는 삶의 조각을 모아간다. 마치 작은 타일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아줄레주 모자이크를 완성하듯, 단편적인 경험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삶을 만든다.
또한 이러한 기억은 사회적 관계와도 연결된다. 기억은 종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며,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고,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먹은 밥상, 친구들과 웃으며 걷던 골목길, 연인과 나눈 사소한 대화들. 이 모든 것이 ‘기억 자아’에 저장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나는 보석이 된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누리는 최고의 행복은 단지 감각적 쾌락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쾌락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기억으로 남으며, 나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가에 따라 그 깊이가 결정된다. 경험 행복은 순간의 불꽃처럼 찬란하지만, 기억 행복은 그것을 담는 등불처럼 오래간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기억할 수 있음'이고, 그 기억을 통해 ‘나’라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일은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린 것을 잘 기억하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삶은 결국, 아름다운 기억을 얼마나 많이 간직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의 나에게 따뜻한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오늘도 순간을 살아가고, 기억을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