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칼국수를 판다고?

by Lohengrin

칼국수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정경이 있다.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가 먼저 떠오르고, 도시의 오래된 뒷골목,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쟁반에 들고 나오는 노포가 연상된다. 또한 찬바람 부는 늦가을, 김을 불며 먹던 그 정겨운 맛. 칼국수는 서민의 음식이고, 언제 어디서든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통념’을 깨뜨리고 칼국수에도 품위가 있음을 보여주는 집이 있다. 서울 강동구 일자산 자락에 있는 허브천문공원을 품고 있는 '강동칼국수'집이다.

어제 지인 4명이 저녁 5시쯤 모여 저녁식사 겸 수다 떨 장소를 물색하다 네이버 검색창에 걸려든 곳이다. 나는 카톡으로 받은 장소를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무작정 갔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식당으로 올라가면서 "이곳이 칼국수집 맞아?"라는 의심이 들었다. 식당이 공원 근처의 숲 속에 있는 것도 심상치 않은데 식당 건물도 그렇고 식당 주변의 조경이 예사롭지 않다. 식당으로 안내하는 사인보드를 따라가니 칼국수집이 아니고 요즘 서울 인근 교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베이커리카페 건물과 진배없었다. 베이커리카페 차리려고 하다가 업종변경한 집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지인 4명이 모두 각자의 차량으로 도착해 한 자리에 모여 메뉴 주문을 한다. 일단 메뉴판은 칼국수에 주력하는 전형적인 칼국수집이다. 만두와 육전, 수육이 함께 보조 메뉴를 형성하고 있다. 칼국수를 먹기 전 애피타이저식으로 수육과 만두를 먼저 좌석에 있는 키오스크 단말기로 주문을 한다. 그리고 마주한 만두와 수육 그리고 간단히 놓인 듯인 정갈한 배추김치와 파김치는 맛을 넘어 멋을 품고 있다.


그제야 이 칼국수집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다시 보게 된다. 이 칼국수집은 단순히 맛있는 칼국수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그곳은 ‘칼국수의 품격’을 새로 쓰는 공간이었다.


이 식당은 통창 건너 허브천문공원을 차경(借景)으로 삼고, 식당 정원에 물의 반영으로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물의 정원이 있고 넓은 잔디밭에 파란색 파라솔 벤치가 놓여있다. 칼국수집 조경과 외관으로는 럭셔리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는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전형이다. 식사공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같은 칼국수를 먹어도 분위기가 맛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을 안고 먹는 한 끼는 단순한 식사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음식 맛의 품질도 자연에 걸맞게 고급스럽다. 12,000원이라는 칼국수 가격이 미안할 정도다. 사골로 푹 우려낸 육수에 어우러진 칼국수. 단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드는 정성의 음식이다.

칼국수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이 집의 진가는 곁들임 메뉴에서 더욱 빛난다. 보조 메뉴가 아니라 또 다른 메인이 된다. 수육은 잡내 없이 부드럽고 촉촉하며, 육전은 마치 고급 한정식집에서나 나올 법한 섬세함이 있다. 손만두는 얇은 판두피에 만두소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다. 게다가 밑반찬 하나, 수저 하나까지 정성이 묻어난다. 수저는 개별 포장(아시겠지만 고급 한정식집 정도되어야 수저통이 아닌 개별 포장형태로 바뀐다)되어 나오고, 설거지 공간은 주방과 분리해 청결과 위생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화장실은 호텔 못지않게 청결하고, 넉넉한 주차장은 손님을 향한 배려로 읽힌다.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다. 2층에 올라가면 또 하나의 공간이 기다린다. 이 집의 카페는 단순한 부속 공간이 아니다. 커피 향이 먼저 반기고, 입에 닿는 순간 고급진 풍미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식당에서 식사한 고객은 1,000원 할인 혜택을 받지만, 그것이 이 공간을 ‘저렴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커피 역시 모든 면에서 ‘디테일’로 승부한다. 칼국수와 카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선 전혀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고급 식문화 공간으로서의 균형이 절묘하다.

이 집의 운영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심’인 듯했다. 식사를 끝내고 주인장을 뵙자고 청했다. 진정한 맛과 멋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날의 재료는 직접 가락시장에 들러 손수 고른단다. 어떤 재료든 미리 만들어 두는 법이 없다. 사골 국물과 칼국수 반죽만 전날 미리 준비되는데, 이 반죽조차도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에 따라 물과 식초의 비율을 조정한단다. 그날 아침, 영업 전 전 직원이 모여 칼국수를 끓이고 시식하고 그날의 반죽과 육수가 오늘 손님에게 내놓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단다. 하나의 음식이 손님에게 가기까지 이토록 섬세한 확인 절차를 거치는 곳은 드물 것이다. 그저 음식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식당의 품격은 홀 매니저들의 움직임과 표정,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미소와 웃음, 손님이 지금 뭐가 필요한지 조망하고 있었다. 종업원들의 이런 분위기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칼국수집에는 송구하지만 12,000원 칼국수집에서 내놓을 수 있는 품격 이상이다. "혹시 자녀분이나 며느리신가요?"라는 질문은 황당한 궁금증일 뿐이었다.

칼국수라는 서민 음식을 이토록 고귀하게 만든 공간. 허브공원을 배경으로, 계절마다 바뀌는 허브 향기를 곁들여, 주인의 손끝 정성이 배어 있는 식사.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하루의 소중한 장면 하나가 됐다. 식당의 하드웨어는 넓고 쾌적하고 고급스럽다. 소프트웨어는 맛과 서비스, 청결함과 운영 철학까지 완벽히 갖추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모여 한 그릇의 칼국수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흔히 맛집이라 하면 ‘소문난 집’을 떠올리지만, 진짜 맛집은 조용히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쏟는 곳이다. 칼국수에 혼이 담긴 이 식당은 그 정의를 다시 써낸다. 그저 배를 채우는 칼국수가 아니라, 그날 하루를 기억하게 만드는 한 그릇. '강동칼국수' 그곳은, 칼국수의 품격이 살아있는 집이다. 식사를 끝내고 30분 정도 허브천문공원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야 식사를 끝냈다고 할 수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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