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흔적

by Lohengrin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양피지에 글을 남기던 중세 시절, 양피지 가격이 비싸서 양피지를 새로 만들어 쓰는 것보다 재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기에 원래 쓰여있던 글 위에 다른 내용의 글을 다시 써서 재활용한 양피지를 말한다. 이 팰림프세스트 양피지는 단순한 양피지의 재활용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퇴적이고, 기억의 잔존이며, 지워내려 해도 끝내 남겨지는 흔적에 대한 은유이다. 고대 문서 보존의 실용적 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팰림프세스트는 인간 존재, 문명, 생명, 그리고 우주에 대한 철학적 통찰의 창으로 확장되었다.


팰림프세스트의 어원은 그리스어 ‘palin’(다시)과 ‘psēstos’(긁다)에서 비롯된다. 말 그대로 ‘다시 긁어낸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양피지 가격이 비싸서 오래된 문서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롭게 기록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들여 문자를 지워도 잉크의 자취는 남고, 그 아래엔 예전 기록의 흔적이 미세하게 떠올랐다. 물리적으로는 덮어썼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워지지 않음’은 인간의 문명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고 믿으며, 과거를 지우려 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고, 지워낸 줄 알았던 옛 제도나 사고방식은 또다시 얼굴을 드러낸다. 전제정치, 종교적 갈등, 제국주의의 유령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문학과 예술에서 팰림프세스트는 경제적 이유로 발생했지만, 그것이 남긴 형식은 오히려 예술적 깊이를 더했다. 화가는 한때의 열정을 캔버스에 그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다시 흰 물감을 칠하고 다른 그림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의 '풀밭(Patch of Grass)' 그림 아래에도 한 여성의 초상화가 숨어있고 피카소의 '기타치는 노인(The old Guitarist)'의 그림 아래에도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이 그려져 있어 대표적인 팰림프세스트 사례로 알려져 있고, 티치아노, 렘브란트, 카라바조, 마그리트 등 많은 화가들도 창작 과정의 고뇌 속에 팰림프세스트 회화들을 남겼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팰림프세스트 소설의 상징적 사례다. 수도원 도서관 안에 숨겨진 책들과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덮이고 숨겨졌지만, 그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 소설의 주요 서사이다. 그 진실을 지우려 했던 자들의 의도와, 진실을 드러내려는 자들의 끈질긴 노력 사이의 대립이 곧 팰림프세스트적 구조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의 유전체를 팰림프세스트로 비유한다. 진화란, 무언가를 완전히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 위에 새로운 정보를 덧쓰는 과정이다. 고대 생물의 유전자 잔재는 여전히 우리의 세포 속에 존재하며, 때로는 무의미하게, 때로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도킨스는 이를 ‘불멸의 유전자’라 불렀다. 즉, 생명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의 흔적 위에 쌓여온 복합적 구조라는 것이다. 그 흔적은 때때로 무의식적 습관, 본능, 또는 질병의 원인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팰림프세스트는 지워진 과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부로 계속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팰림프세스트는 시간뿐 아니라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야 소피아 성당이다. 동로마 시절 기독교 성당으로 세워졌지만, 오스만 제국이 들어선 후에는 모스크로, 다시 박물관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성화가 지워지고 그 위에 이슬람식 모자이크가 그려졌지만, 여전히 그 벽면엔 미묘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도 마찬가지다. 노르만, 비잔틴, 아랍, 로마네스크의 양식이 복합된 이 성당은 그 땅을 지배했던 수많은 문명의 흔적이 덧씌워진 구조다. 이는 정복과 저항, 융합과 배제의 역사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겹겹의 흔적을 읽는 일은 곧 인간 문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팰림프세스트는 단순한 과거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시간의 레이어를 덧입는다. 기억, 경험, 학습, 문화, 감정은 매일같이 우리라는 존재 위에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그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 이루어진 존재다. 탄소, 수소, 질소, 철, 산소… 이 모든 원소는 별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결국 우리는 별의 기억을 품고 있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의 물질은 형태를 바꿔 또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바위가 되고, 나무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팰림프세스트의 본질, ‘형태는 바뀌어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연의 원리이다.


팰림프세스트는 단순한 기록의 방식이 아니라, 삶과 존재, 기억과 진화,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메타포이다.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오늘을 규정하고, 내일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공부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하고,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팰림프세스트 위에 살고 있다. 과거의 흔적을 지니고, 오늘의 이야기를 덧입히며, 미래의 누군가에게 새로운 층위를 남긴다. 결국 인간이란,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의 일부이다. 순국선열들의 팰림프세스트로 인하여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현충일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묵념을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짜 뉴스에 혹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