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 달력

by Lohengrin

1년 365일. 이 숫자를 우리는 어릴 적부터 외워왔고, 해가 바뀔 때마다 새 달력을 받으며 그것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오늘, 7월 2일은 1년의 절반, 183일이 지나고 남은 날은 182일이다. 정확히 중간 지점을 넘어선 셈이다. 이 단순한 날짜가 던지는 울림은 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어?"라는 말이 입에서 새어 나오고,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게 한다. 이처럼 달력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나 앱 속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을 계획하고 조망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의 지도’이자 ‘미래를 당겨보는 창’이다.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예측하는 것은 인류 문명 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다. 달력은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흐름에 숫자를 입히고 문자를 부여해 가시화한 기념비적인 인류의 창조물이다. 태양과 지구의 공전 주기, 달의 변화 주기 등을 수치화해 하나의 체계로 만든 것이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하루를 칸에 나누어 놓은 이 단순한 도구는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계획하게 한다.


이제 달력은 벽에 걸리기보다는 손 안의 스마트폰 속 앱에 자리 잡았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일정이 추가되고 알람이 울린다. 잊을 일 없이 자동으로 알려주고,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공휴일이 자동으로 입력된다.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 잊힌 것도 있다. 달력이라는 오브제가 가지던 감성적 경험이다. 예전엔 해마다 새 달력을 받으면 설렜다. 공휴일을 찾아보며 휴가를 계획하고, 빨갛게 표시된 명절날과 주말이 연결되는 날을 발견하면 환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달력 위에 빨간 펜으로 기념일을 적고, 친구 생일을 동그라미 치던 손끝의 감성이 있었다. 달력은 단순한 날짜의 나열이 아니라, ‘기억의 지도’였다.

달력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 하나를 제공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흐른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지나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더 분명히 삶의 유한함을 느끼고, 그에 따라 하루를 의미 있게 살고자 다짐한다. 종이 달력은 하루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날짜를 넘기게 되고, 지나간 날짜 위에 쓴 메모들은 그대로 시간의 흔적이 된다. 이 흔적은 곧 나의 기억이고, 나의 삶이다. 디지털 캘린더에서는 삭제되면 사라지지만, 종이 위의 기록은 ‘소멸되지 않은 시간’으로 남는다.


달력의 가장 큰 힘은 바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 우리는 달력을 보며 약속을 잡고, 프로젝트 마감일을 정하고, 여행을 계획한다. 즉, 달력은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당겨오는 장치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을 예측하고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달력은 단순히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앞서가는’ 인간의 지혜이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는 존재이다. 달력은 이 인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발명품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앞으로의 시간’을 잘 설계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종종 꿈이나 인생 계획을 이야기할 때 막연하게 생각한다.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는 책을 써야지.”, “언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이 ‘언젠가’는 언제나 오지 않는다. 왜일까? 인생달력에는 날짜가 쓰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달력에 날짜를 적는 순간, 미래는 실체화된다. 막연했던 꿈이 ‘2027년 10월’이라는 구체적인 시점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실천이 시작된다. 10년 후를 위한 달력, 30년 후를 위한 달력 수첩을 만든다는 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이자 자기 삶의 기획자임을 선언하는 행위다. 그 수첩에는 내년 봄의 계획부터, 5년 후에 달성할 목표, 10년 후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라이프스타일까지 적을 수 있다. 연간 계획, 분기별 점검, 월간 회고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희망사항이 아닌 실행계획서가 된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진 않을 것이다. 중간에 수정도 해야 하고, 계획이 어그러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달력 속에 적어둔 꿈은 이미 세상에 나온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첫 단추가 된다.

삶은 완벽한 일정표가 아니다. 아무리 계획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결정했던 목표를 바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달력에는 연필로 쓰는 것이 좋다. 필요할 땐 지우고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쓰는 달력은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 계획을 세웠을까’ 회의가 들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매년, 매달, 매일, 내 인생의 달력을 다시 펼치고 내용을 계속 갱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달력은 살아 있는 삶의 도구가 된다.


우리는 어제의 기억을 붙잡고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달력은 그 내일을 오늘의 언어로 적어보라고 말해준다. 시간이 흐르는 방향은 한 방향이지만, 삶은 늘 계획과 우연 사이를 유영한다. 오늘, 7월 2일. 한 해의 절반을 넘긴 지금, 나의 달력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는가? 아니면 먼 훗날의 어느 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향해 날짜 하나를 표시해 두었는가?


당장 해보자. 미래의 종이 달력이 없으니 휴대폰 속 달력에 들어가 보자. 미래의 시간으로 넘겨본다. 헉 ^-^;;; 달력의 숫자가 계속 넘어간다. 10년 후인 2035년 7월 달력도 표시된다. 언제까지 알려줄 건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휴대폰 달력이라는 놈의 무시무시한 계산력에 질리게 된다. 미래의 매년 나의 생일까지도 표시해 준다. 휴대폰 디지털 달력 속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을듯하다.


그런데 나의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 없고 아무 계획이 없다면 내 인생이 가는 길을 잘못 가고 있을 확률이 100%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대한 카르페 디엠을 누리는 것도 1초 후 미래의 시간을 계속 이어서 살고 있음을 눈치채는 일이다. 미래의 달력을 만들어 써 볼 일이다.


10년 단위의 '시간 여행자 달력'을 만들어 장사나 해볼까? 팔릴까? 이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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