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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4. 2020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춥다?

태풍급 바람을 동반한 비가 들이칩니다. 어제저녁, 휴가 나온 막내 녀석 귀대하는데 데려다주느라 폭우 속을 뚫고 충북 진천까지 다녀왔습니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좌우로 작동해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운전하는 동안 바싹 긴장해야 했습니다. 이 아침도 장마전선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모릅니다. 잠시 잠시 주춤거리다가 또다시 강한 바람과 함께 억수로 퍼붓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내려도 누가 뭐라 할 사람 하나도 없을 텐데 자연은 그저 물의 무게를 내려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기온은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릴 정도로 선선한 21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습니다. 조금 열어놓은 창문 틈새로 휘파람 불듯 바람이 파고들고 빗방울까지 들이칩니다. 선선함을 넘어 춥다고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오늘은 체온 유지를 위해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할 듯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근원 중에 하나가 '온도'입니다. 온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생존 조건이 달라져 적응의 필요성을 낳게 됩니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남극과 북극에 생명체가 없고 태양계의 끝에 놓인 명왕성도 영하 230도의 극한이라 대기가스가 얼어붙을 정도여서 역시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태양계처럼 수소핵 융합으로 빛 에너지를 발산하는 항성이 있고 그 뜨거운 열기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지역을 '골디락스'라고 합니다. 이 골디락스 지역에 지구라는 행성이 있었기에 생명이 번성하는 행운을 누렸던 것입니다. 바로 온도가 생명을 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상 30도도 안 되는 온도에 무더위를 호소하고 영상 20도 정도에 선선하고 춥다고까지 합니다. 때론 예전 같은 시기보다 온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둥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열대야를 한 달간이나 끌었던 1994년의 기록을 2018년에는 가뿐히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그 기록을 깨지 못했고 올해 기온의 추세를 보건대 역시 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의 기온을 올리는 주범이 인간임은 자명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지구 생태계는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흐름에 의한 변화에 더하여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인위적 변화가 그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근원은 무시한 채 높은 온도만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아열대 식물이 한반도에 상륙했다느니, 열대성 어류들이 한반도 강에서 발견된다느니, 낙동강에 녹조가 예년보다 빨리 번지고 있다느니, 뭐 이런 류의 보도들이 눈에 띕니다. 본체를 못 보고 겉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도에 대한 근원을 들여다봅니다. 찻잔에 찻잎을 넣고 물을 끓여 부었을 때와 정수기에 있는 온수를 부었을 때도 온도의 차이로 인한 찻잎의 움직임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물을 끓였다가 부으면 찻잎들이 처음에는 떠올랐다가 모두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그러나 정수기 온수 물을 부은 찻잔의 잎들은 대부분 내려앉기는 하지만 작은 많은 부스러기 잎들은 계속 찻물 위를 떠돌아다닙니다. 물론 찻잎 거름망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물을 부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물을 끓여 잠시 식혔을 때와 정수기 온수의 온도차는 20~30도 정도 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온도차에 의해 우러나는 찻잎의 색깔도 달라집니다. 그것은 결국 차의 맛을 결정합니다. 온도가 차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온도는 조작할 수 없는 외부 조건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에어컨을 만들고 히터를 만들어 외부 조건을 견뎌내는 내성이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근본적인 환경의 온도는 인간이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그 온도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인종과 흑인과 백인이 모두 온도와 지리적 환경에 적응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인류가 무수한 세대교체를 해나가고, 시간적으로 100만 년 정도 흐르면 피부색이 모두 같아진 동일한 인류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혼혈이 우성으로 지배하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되었습니다. 피만 섞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피부색도 섞여가고 있습니다. 피부색은 검은색이 황색과 백색의 우성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자연 진화입니다.


민족을 이야기하고 피부색을 말하는 것이, 잊힌 과거를 회상하는 일로 바뀌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바람 부는 아침 바깥 온도를 통해 인류의 변화도 넘겨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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