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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6. 2020

꿉꿉한 습기를 버텨내야 하는 이유

2주일째 지속되는 장맛비 속에서도 매미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비를 피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었나 봅니다. 길어야 2주일밖에 성충으로 살 수 없는데 탈피한 전 생애를 빗속에서 보낸 매미의 세상을 어땠을까요? 이 놈의 세상은 비만 오는 세상으로 알고 갈 겁니다. 자연조건이 비와 물 속이지만 그래도 후손을 남겨야 하는 본능은 애타게 배우자를 찾아 빗속으로 자기의 존재를 소리로 알립니다. 빗속에 듣는 매미 울음소리가 절규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인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위해 이 빗속을 뚫고 직장으로, 사업장으로, 영업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저 폭우 속으로 말입니다. 코로나 19다, 장마다 하지만 그래도 휴가시즌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지대 도로가 침수되어 교통통제가 되는 곳이 많아 차량 정체가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량이 줄어든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쉴 땐 쉬어야 하고 놀 땐 놀아야 하는데 코로나로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놀아도 노는 게 아닌 세상이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곧 장마도 그치겠죠. 대양의 바닷물이 모두 대지로 쏟아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국방부 시계 돌듯이 어차피 자연은 Automatic Sequencing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시간이라고 정의 내린 유일한 존재입니다. 식물은 시간을 점유했지만 인간은 공간을 점유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점유한 생명체는 없습니다. 식물은 씨앗으로, 인간은 운동을 발달시켰습니다. 시간을 점유 못하고 운동을 발달시켰기에 시계열적 운명을 갖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화의 경주중임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세월이 참 유수와 같다"는 말로 시간의 그루터기를 점검합니다. 모든 인간이 시간을 유수와 같이 느끼는 이유는 무얼까요? 세상 만물에 똑같이 적용되는 우주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존재를 획득하면서 시간이 출현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유수와 같다"는 결국 정해진 시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현존 자체가 비교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해가 뜨고 지고 비가 오고 걷히고 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고, 이 모든 현상이 비교의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는 바로 비교되는 기준과 대상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시간이 그 비교의 첫 번째 대상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한정성을 갖게 됩니다. 시간의 비교를 하게 되면 먼저 있는 것, 나중에 생긴 것이 구분되고 생사의 구분도 함께 벌어집니다. 그렇게 한정된 시간을 살다 보니 지나온 시간은 항상 아쉽게 느껴집니다. 지나온 시간을 정말 알차고 보람 있게 보냈다고 느끼는 존재는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론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100% 가치 있게 활용했다고 자부할 수 없는 것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시간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1분 1초도 아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깨어있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쉬고 잠자고 놀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럼 무얼 위해 시간을 가열하게 활용해야 할까요? 바로 가치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유수와 같은 시간을 적절히 배합하여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려면 확실한 목표를 설정해야 가능합니다. 목표지향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그저 그렇게 살다 가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 시간 나의 목표를 재정립해 봅니다. 뜬 구름 잡듯 잡히지 않을지라도 허공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목표도 여러 방향이 있을 테지만 구심점을 하나 잡아놔야 합니다. 어떤 외부적 유혹에도 강건히 지키고 유지하며 꾸준히 해내야 할 그 어떤 것 말입니다. 가치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가치는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自然의 법칙을 따르는 순리가 작용합니다. 바로 "무한대의 확률로 그러하다"만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치는 동등한 자격을 갖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비교의 계량추를 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있는 그 자체로, 존재 그 자체로 137억 년, 46억 년의 DNA를 보유하고 현존하고 있다는 엄청난 현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배려와 아량이 함께 하는 인본의 가치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인하여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생존의 한계에 까지 치닫고 있는 모순 속에서도 그 모순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존재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개인의 가치를 너머 사회와 인류의 가치는 역시 인간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창밖의 저 무지막지한 빗줄기에 대한 가치도 시간의 흐름 속에 곧 묻힐 것입니다. 자연의 흐름과 시간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상선약수의 길입니다. 흐르는 데로 가는 데로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시간의 가치를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장마는 그렇게 시간 속의 한 부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마저도 곧 사그라 들것임을 알고 있기에 버틸 수 있습니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게 자연의 원리이자 법칙입니다. 버텨내시죠. 이 꿉꿉한 비의 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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