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동물농장'과 '1984'라는 불멸의 고전으로 친숙한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그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다. 1903년에 태어난 그는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을 관통하며 살았다. 단순히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병사로 직접 참전했던 그는, 그곳에서 공산주의 내부의 비정한 권력 투쟁과 전체주의의 민낯을 목격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문학적 성취들은 결코 상상력의 산물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남긴 깊은 상흔 위에서 피어난 처절한 기록이었다.
조지 오웰이 1936년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오웰은 이 책에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평범한 삶의 편린들을 포착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포효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빵을 나누고, 서툰 글씨로 고향에 편지를 쓰며, 귀한 담배 한 개비를 아껴 피우는 인간적인 일상이 존재한다. 참전 기간 내내 제대로 된 총 한 자루 없어 총 한발 쏴보지도 못한 채, 춥고 더러운 참호 속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 그 지루한 기다림마저도 오웰에게는 전쟁의 본질을 투영하는 거울이었다.
오웰이 정의한 전쟁은 단순히 물리적 충돌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총과 대포가 일상을 대체하는 순간, 즉 가족과 안전하게 시간을 보내고 평화롭게 줄을 서서 빵을 사는 당연한 권리가 박탈된 상태를 전쟁이라 보았다. 특히 그는 전쟁의 포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어의 타락'과 '선전의 왜곡'임을 간파했다.
그는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라고 일갈했다. 전선에서 피 흘리는 병사들의 비참한 일상보다, 안전한 후방의 지식인들이 책상 앞에서 꾸며낸 '애국적이고 정당한 전쟁의 풍경'이 대중의 눈을 가리고 광기를 부추긴다는 폭로였다.
오웰은 전쟁이 인간의 사유 능력을 마비시키고, 악을 평범한 것으로 둔갑시킨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끝까지 평범한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했으며, 이를 파괴하는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글이 오늘날까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숨 쉬는 인간의 일상을 지키려 했던 그의 진심 덕분일 것이고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중동 전쟁 소식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지금 중동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마치 타인의 안방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소란' 정도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크라이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이름 모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외면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함과 '우리 가족, 우리나라'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다.
여전히 녹슨 철조망이 걷히지 않은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우리는 전쟁의 광기를 타성적으로 묵인한다. 어쩌면 한국전쟁의 트라우마가 너무도 깊어, 소중한 일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무관심이라는 방어기제 뒤로 숨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생리는 잔혹하다. 대개 힘이 강한 자가 먼저 싸움을 걸기 마련이지만, 진짜 비극은 힘없는 자가 생존을 위해 맞설 때 극에 달한다. 강자에게 대항하는 약자는 죽음을 각오한 비장함 속에서 잔혹해질 수밖에 없다. 물리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 바로 극단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한 번 찔러도 될 걸, 수십 번 찌르게 된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약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슬프게도 현대인은 이 참혹한 현실에 무감각해져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생중계되는 전쟁의 포화는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오락 게임처럼 소비된다. 미사일이 떨어지는 광경보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기름값이 폭등하는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 저렇게 질질 끌고 있어, 빨리 끝내지"라는 무심한 반응 속에서 인간에 대한 동정심은 거세되고, 폭력에 대한 암묵적인 예찬 혹은 방관만 남았다.
내가 지금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가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즐기는 이 순간과 저 멀리 지나가는 전철의 덜컹거림에 귀 기울이는 평온을 느끼는 이 일상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미사일의 굉음 속에 생사의 존엄이 묻히는 전장에서도 누군가는 내가 지금 누리는 이 평범한 아침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전장의 그들에게 일상은 희망이자 곧 구원이다.
세상에 그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폭력이 우월성을 점하는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상대라 할지라도 힘으로 제거하려 든다면, 반드시 더 큰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수천 년간 증명해 온 명백한 진리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전쟁의 무감각에서 깨어나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상의 평화는 나 혼자만의 성벽 안에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일상을 존중하고 연대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