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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5. 2020

전철에서 큰소리치는 꼰대는 되지 말자

새벽엔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옵니다. 그렇게 계절의 경계는 시나브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낮의 온도가 맹위를 놓지 않고 있지만 그렇게 중첩의 시간이 차츰 길어지고 어느 임계점에서는 우위의 시간이 바뀌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린 다른 계절을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아직은 경계 안에서 선점한 온도의 지배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출근길 전철역 선로 위로 놓인 보도를 걸어오며 동녘 하늘에 걸린 태양의 각도가 남쪽으로 많이 누워 있는걸 눈치채게 됩니다. 그렇게 해의 기울기도 시간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해가 기울어지니 시간이 따라가고 있는 동시성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길을 나선 발걸음에 땀에 따라옵니다. 전철역에 도착하자 땀에 젖은 셔츠가 달라 붙습니다. 섹시하게 봐줄 처자도 없는 이른 새벽입니다. 먼길 가시는 어르신들이 점령한 전철입니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는 시국에 이렇게 일찍 어르신들은 모두 어디를 가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삶의 현장으로 가시는 길일까요? 여유의 시간을 즐기러 가시는 길일까요? 코로나 19를 피해 다니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나름 시원한 전철 안을 위안으로 삼고 출입문 옆에 기대어 서서 햇살 쏟아지는 전철 밖 풍경을 주시합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데 아직 그 영향권 밖에 있는 관계로 햇살을 볼 수 있는 아침입니다. 잠시 멍한 망상에 취해있는 사이, 멀리 경로석 쪽에서 큰 소리가 들립니다. 경로석인데 젊은 처자가 자리에 앉아있다고 한 어르신께서 한 소리를 합니다. 씁쓸한 풍경입니다. 나이듬이 존경받는 시대는 아닌데 말입니다.


불현듯 일본인들의 좌석 양보 행태와 한국인들의 좌석 양보 행태가 상당히 다르다는 신문 칼럼이 생각납니다.


일본인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데 왜 그런 차이가 날까요? 일본에 노인 공경(恭敬) 관념이 없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아니랍니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받아도 한사코 사양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노인들 스스로가 몸 상태가 불편하지 않은 이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심리 이면에는 남에게 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도덕률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자립심'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심리를 알고 있기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아니면 굳이 먼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인이기 이전에 '자립 의지와 능력'이 있는 개인으로 대우하고, 노인들도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일본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노인들이 앞에 서 있건 말건 사람들이 신경을 안 씁니다. 그러나 노인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여러 사람이 경쟁하듯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가 양보 기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지하철에서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앉아있는 사람을 꾸짖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노인 공경의 전통 관념은 소중한 것이지만,  공경의 의미가 타인에게 배려를 강요하거나 당연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눈앞입니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립심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음가짐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가끔은 학생들로부터 자리양보를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벌써 그럴 나이도 아니며 아직 내 외모는 20대 청춘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쯤 학생들로부터 좌석양보를 받게 되면 불현듯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하고 창문으로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50대, 한 세대만 뒤로 가, 우리 부모님 세대만 봐도 50대 중반이면 회사를 퇴직하시고 집에 계신 모습들을 봐왔습니다. 나이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는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50~60대는 가장 활발히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이로 바뀌었습니다. 은퇴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만큼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가 확장되고 늦춰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100세를 사니 당연한 생존 패턴의 변화입니다. 이젠 '늙었다'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가 됐습니다. 부담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거부하려고 해도 안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과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전철에서 '경로석을 차지하고 앉았다고 젊은이에게 큰소리치는 나이'는 아님을 위안으로 삼아 봅니다. 물론 큰 소리의 몰상식을 표출할 만큼 감 정직이지도 않음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나이 들수록 몸의 건강을 지키고 공부하여 정신건강도 챙겨야겠습니다. 신체와 정신이 함께 건강해야 전철에서 큰소리 내는 불편함도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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