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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7. 2020

태풍의 거친 숨결을 다스리는 방법

이 아침, 차 한잔과 마주했습니다. 태풍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경고로 긴장해서 그런지, 가로수를 부러뜨릴 것 같은 강풍이 더욱 가열차게 부는 것 같은 느낌 속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누그러트리기 위함입니다. 뭐 매일 아침 대하는 차 한잔임에도 차를 마주하는 느낌과 상황에 따라 그 분위기는 오늘처럼 천차만별로 다가옵니다. 밖은 바비의 태풍이지만 조용한 찻잔의 태풍도 지켜볼만합니다. 머그잔 속의 찻잎이 풀어내는 황금빛 색깔을 지켜보며 잠시 관조의 美에 빠져보는 아침시간의 여유로운 호사를 누려봅니다.


저는 티백 녹차보다는 잎차를 잔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마십니다. 캔에 든 싱가포르산 TWG 홍차가 아직 사무실에 숨겨져 있습니다. 찻잎과 허브향 꽃잎이 같이 배합되어 있는 Black Tea입니다. 바싹 건조한 잎차를 엄지와 검지로 조금 집힐 만큼만 덜어 머그잔에 넣습니다. 물을 끓이고 잔에 부으면 찻잎이 스르르 풀어 봄빛을 우려냅니다. 동시에 같이 있던 꽃잎도 향을 함께 내놓습니다. 처음에 물을 부으면 잎들이 둥둥 떠오르는 녀석도 있고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놈도 있습니다. 떠오르는 녀석들은 크기가 작은 부스러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잎들이 자기의 색을 풀어내길 5분 정도 지나면 물에 떠있던 잎들도  대부분 서서히 내려앉습니다. 말려있던 잎들이 새봄 예전의 그 모습으로 모양새를 갖출 즘에 한 모금 마셔 봅니다. 아직도 찻잔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은 녀석들을 호호 불면서 말입니다. 꽃향은 코로 들어오고 차 맛은 입으로 들어옵니다. 아주 하찮게 떠있어 제 빛 조차도 우려낼 수 없을 것 같은 부스러기라도 그 역할이 있었던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잎새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같이 공존하는 또 다른 생물을 위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찻잔에 떠 있는 잎새를 피해 호호 불어 마시게 되면 뜨거운 찻물로부터 입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불어 마시는 행위이지만 찻물에 떠있는 부스러기들이 아니었다면 그냥 후루루 들이켰을 수 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에 쓸모가 있고 그래서 아직 생존하고 실존의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작은 찻잔 속의 홍차잎 부스러기가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그대의 존재는 곧 우주의 존재와 다름없습니다. 찻잎은 이산화탄소와 물과 태양빛 만으로도 존재를 과시했는데 그대는 거기에 더해 산소와 질소와 칼슘과 나트륨과 황과 인을 더해 존재를 넘어 의식까지도 만들어냈으니 말입니다. 그대와 제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실존인지 다시 한번 반추하게 됩니다.


그렇게 깨닫고 알게 되면 찻잔의 부스러기 하나, 밖의 저 광풍까지도 반갑게 다가옵니다. 태풍의 거친 숨결조차도 너무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잘 토닥여 그냥 지나가도록 격려를 해줄 수 있습니다. 오랜 친구한테 해코지할 녀석은 많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태풍을 보내고 나면 청명한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과 태풍의 뒤끝에 남아있던 산들바람으로 모양을 바꾸어 다시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세상은 모습을 바꾸고 변화하는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입니다. 어떤 상황이 다가오고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모두 감당해내야 하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도 마찬가지이고 태풍 바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참고 견뎌내고 이겨 내다 보면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으면 됩니다. 그래야 힘을 잃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대와 함께라면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힘이 되는 그대가 제 옆에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영광이자 행운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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