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날입니다. 달력의 숫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바깥 자연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난밤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던지 창문을 닫을까 망설이기까지 했습니다. 9월이라는 숫자의 바뀜이 바람의 양도 늘린 탓일까요. 이틀 후에는 태풍이 들이닥칠 거라 하지만 오늘만큼은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전형적 어느 가을날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낮에는 더워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잠시 귀를 기울여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해 봅니다. 매미소리가 들리나 해서입니다. 그런데 매미소리를 들리지 않습니다. 작은 풀벌레 소리, 까치 소리, 멀리 자동차 가는 소리, 심지에 아파트 위층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9라는 숫자 앞에 여름은 뒷걸음을 친 걸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매미는 잠시 쉬고 있을 테고 여름의 햇살도 잠시 파장을 늘리고 있을 겁니다. 중첩의 시간입니다.
불현듯 9월의 기억들과 연관된 모습들을 떠올려봅니다. 딱히 확 떠오르는 모습이 없는 것을 보면 장기기억에 내장되어 있을 정도의 이벤트가 없었다는 증거일 겁니다. 영상필름 돌리듯 기록되어 있는 것이 있을까 집중해봐도 낚시에 물고기 걸리듯 걸려오는 것이 없습니다. 기억의 저장고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9의 숫자와 연관 지을 낚싯바늘의 미늘 같은 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기록은 과거의 어느 이벤트에 대한 기술이지만 현재에 미래에는 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불러오는 시냅스의 확장으로 작동합니다. 신경의 시냅스에 칼슘과 나트륨의 이온 농도 차이가 옅어져 기억의 파고가 낮아질 때 기록은 그 파장을 높이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은 이렇게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는 회상의 단서를 제공하고 한정되고 잊힐 수밖에 없는 기억의 한계를 뇌 골격 바깥으로 이동시킨 위대한 발명입니다.
삶에 대한 하찮은 표현일 수 있고 인간관계에 대한 애증이 묻어나는 문장들로 아침 글을 거의 매일 씁니다. 뭐 이런 것 까지 썼을까 하고 하는 것조차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 내려가면 새로운 시각으로 문장들을 조명하게 됩니다. 해석이 따라붙는다는 것입니다.
글로 표현된 것조차 당시의 그 기분 그 분위기 그 생각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활자로 표현된 글을 읽으면서 최대한 그 당시의 상황으로 합일되고자 하나 그것은 언감생심일 겁니다. 지나간 것은 그런 것입니다.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가장 근접하게 재생하는 데에는 기록만 한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며 달력을 올려다봅니다. 일요일이 빨간 표시와 더불어 9월의 마지막 날은 추석 연휴로 접어든다고 빨간 날로 표시되어 있는 것도 보입니다. 달력에는 선약되어 있는 약속들과 강의 스케줄들도 적혀 있습니다. 가까운 분의 생일 알림과 골프 약속과 대학원 강의 일정도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달력에 표시가 안되어 있는 일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을 학기면 어김없이 적혀 있어야 할 일정이 아직 적히지 않았습니다. 8년째 일요일마다 공부하는 뇌과학 강의 일정이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대면 강의를 할 수 없어 강의 개설이 계속 미뤄지기 때문입니다. 뇌과학공부는 온라인으로 공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4시간 이상 판서가 계속되는데 화면 속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미룰 수 도 없고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세지고 나니 단어 하나가 세력을 확장해 가끔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온갖 언론매체에서 이 단어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오고 갑니다. 꼭 이 시기에만 등장하는 아주 독특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단어의 형태는 다르지만 1년에 한 번씩은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들도 함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질적 상태를 표현하지만 등장하는 비율은 동등한, 이주 독특한 형태의 단어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아마 이 시기에 등장하는 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단어가 떠오르면 연상되는 센티멘탈한 분위기가 함께 작용하여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단어들도 분명 여러 역할과 분위기를 동반하고 있지만 이 시기에 등장하는 단어만큼의 위엄은 없어 보입니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대표주자의 첫 단어들로 항상 자리매김되어 왔기에 이야기의 화두와 서언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등장함과 동시에 펼쳐지는 자연의 파노라마는 인문학 발전의 원천이라고 할 만큼 변화무쌍함을 보여줍니다. 다른 동어들이 등장할 때 자연의 변화는 천천히 움직입니다. 눈에 보이지만 그 속도가 자연의 시간만큼만 변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등장하는 시기는 인간이 감지하는 시간의 속도보다 더 빨리 흘러가는 듯한 양상을 보입니다. 센티멘탈의 전형적인 조건입니다. 빨리 따라잡지 못하기에 상징과 의미를 부여해 합리화시키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합니다. 그래서 가장 인문학적인 단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을입니다. 오늘은 9월의 시작이자 가을의 시작이라 칭해봅니다. 지긋지긋한 저 코로나 19를 벗어나고픈 간절한 희망이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