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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2. 2020

보냄의 차이

책상 위에 소식을 전하는 이메일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청첩장인데 하나는 부고장입니다. 사람의 안부나 일의 형세 따위를 알리는 말이나 글을 소식(消息)이라고 합니다. 소식에는 삶과 죽음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소(消)는 꺼질 소이고 식(息)은 숨 쉴 식입니다. 죽음과 삶을 한 단어에 포함하고 있는 특이한 단어입니다.


청첩장은 예정된 기일이 담겨있는데 반하여 부고장은 불현듯 황망히 날아듭니다. 불현듯 찾아든 부고에는 앞뒤 잴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보통 3일 만에 치러지는 일이라 잘못하면 조문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기도 합니다. 오늘이 그런 형국입니다. 이승에서 이승으로 떠나는 것과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날 때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떠날 것을 예고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준비된 떠남이 되어야 할 텐데 언제 떠날지 모르니 준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의 한계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제 나이가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경계인에 있음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벌써 대부분 제 나이 또래들은 부모세대들과 이별한 비율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출가시키는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책상에 놓인 두 장의 소식지를 보며, 보내는 일의 소식을 주제로 집어 듭니다.


청첩은 자녀들을 출가 보내는 소식이고 부고는 부모세대를 떠나보내는 소식입니다. 둘 다 보내는 소식인데 한쪽은 기쁨이 있고 한쪽은 슬픔이 있습니다. 같은 보냄인데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요? 바로 삶과 죽음을 보는 관점의 차이일 것입니다. 아니 부고의 관점은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아쉬움과 애절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슬픔의 사연보다는 기쁨의 사연에 대한 단상으로 관점을 옮겨야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이야기하고 기쁨에 웃음 지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이 살만한 것임을 반추하고 활력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 가을에는 부쩍 가까운 직장 동갑내기 및 친구들이 자녀들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을 건네줍니다. 사실 코로나 19로 인해 봄에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들이 줄줄이 가을로 연기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아직 코로나 19의 심연은 깊지만 인륜지대사를 계속 미룰 수 도 없는지라 어렵지만 이 가을에 지인들만 초청하는 소소하게 작은 결혼식들을 치릅니다.  지난해에도 그러더니 올 가을에도 여지없이 친구들의 자녀 결혼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벌써 자녀들을 결혼시킬 나이가 되었나? 홀연 되돌아보게 됩니다.

57.

평소 나이를 되새겨 본일이 거의 없기에 '많이 먹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친구 자녀들의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되면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나 혼자만 나이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주변의 시간적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은 아닌지?' '주변인들과 관계에 소홀한 것은 없는지?' 등등 말입니다. 결론은 '나 혼자만 인식 못하고 있었지 꽤 나이 먹은 상태'였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이번 가을에 자녀 결혼 소식을 전한 친구들을 보면 자녀들이 28살인 경우가 두 건 있습니다. 내년이 아홉수라 올해 결혼을 시킨다는 겁니다. 출가시키는 핑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이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한 친구들입니다. "어차피 출가시킬 거라면 빨리 시키는 것이 좋다"고 덕담을 전합니다. 요즘이야 28살이 적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 나이 때는 대부분 이 나이 때에 결혼을 했습니다. 현재 서 있는 시간의 둘레에 따라 같은 숫자가 보이는 체감의 온도는 이렇게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 나이가 부모세대를 보내고 자식 세대를 맞이하는 끝자락에 와있음은 청첩장을 통해 알게 됩니다. 부모의 부고 소식보다 자녀의 결혼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대는 이렇게 청첩장을 타고 넘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시간을 거슬러 내려갑니다. 세상 만물 그 어떤 것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은 세대교체의 흐름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 유전자를 남겨 전해 놓았고 또 그 유전자가 영속의 고리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청첩장에 이름을 올립니다. 모두에게 축하할 일입니다. 자녀들의 결혼으로 공동의 경제력을 확장하고 가족의 울타리에 목책을 더 보강한 것을 축하하고 사회적으로는 공동체를 지원하고 이끌 작은 기여에 참여하게 된 것을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소식들이 전해지고 쌓이면 또다시 이어지는 네버엔딩 스토리에 미소 짓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와인 한 잔과 치즈 한쪽을 놓고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며 웃고 떠들 친구들이 옆에 있다면 그 미래가 다가와도 하나도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는 현재를 사는 힘이 될 수 있도록, 또한 오늘은, 살아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면 기꺼이 두 팔 벌려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어서 오라 시간이여! 피하지 않고 헤쳐나갈 도전 의지를 불태워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독감 걸리지 않도록 몸 사리고 코로나 19를 피해 갈 수 있도록 체력관리부터 해야겠습니다. 조깅이며 가벼운 스트레칭이라도 잊지 않고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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