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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3. 2020

마스크 너머로 짙어가는 단풍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가을이 되면 단풍은 3색으로 핀다고 합니다. 산에 피는 산풍, 그 산풍이 계곡 물빛에 비치는 수풍,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피는 인풍이랍니다. 의미야 갖다 붙이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가을을 탄다, 계절의 흐름에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많은 이들에게는 그럴싸한 비유일 거 같습니다. 밤하늘에 은은히 빛을 내는 달이 떠 있는 달, 호수에 비치는 달, 술잔에 비치는 달, 마주 앉은 연인의 눈망울에 비치는 달,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달 등 5개의 달이 보인다는 것과 같은 비유겠죠.


그러고 보면 풍류라는 것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그 시류의 감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봄볕 따뜻한 기운에 시간대로 변하는 녹색의 향연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을 찬 빛에 사그라드는 나뭇잎의 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길가의 이름 모를 야생화의 자태를 보고 감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풍류객의 정점에 그대는 서 계신가요? 대부분 본인은 아닐 거라고 부인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가슴속에 내재된 불꽃을 보지 못하고 삭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인만큼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일분일초가 지나면 자연이 어떻게 변할지 읽을 수 있기에 우리 모두는 진정한 자연의 표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도를 통한 선승만 자연의 지혜를 이해하고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고행의 길을 가는 인도의 구루만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그 자연의 지혜를 이해하고 현존하고 있기에 모두가 귀한 존재들입니다. 다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실리콘벨리에서는 이미 기업들이 회사 내에 명상 룸을 만들어 직원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default mode의 브레인 활동 시간을 넓혀주면 그만큼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사고의 범위도 넓어진다는 것을 기업들이 눈치채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을 빨리 실행에 옮기는 능력도 글로벌 기업으로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능력입니다.


종교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던 명상이나 묵상이 이젠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벌써 기업의 생산성 향상 수단으로 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선방에 앉아 면벽수행을 하며 관념의 고리만을 잡아온 동양의 종교는 이미 서양의 과학에 무릎 꿇은 지 오래됐습니다. 미국 대학 연구소들은 이미 동양의 고대 종교에 이르는 전 경전을 영어로 완벽히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쌓아온 선승들의 지적 성과를 한눈에 꿰뚫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과학으로 스며드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만 모르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눈을 더 높고 넓게 들어 타국에서는 어떻게 개념을 정의하고 접근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을 돌아보면 금방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 회사 내에 직원들에게 시에스타(siesta) 시간을 공식적으로 주었다는 소식은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오침 시간도 문화이니 다른 문화권의 관행을 따를 필요도 없고 따라 할 필요도 없다고 일침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저 식사시간을 줄이고 본인이 적당히 알아서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최선이죠. 수면 공간을 운영하는 것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복지가 곧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여 회사에 기여한다는 생각까지 확대시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 기업과 사회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우열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만, 그 작을 것 같은 '이해'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습니다. 신경 섬유 하나하나에 희열을 느끼는 열정 후의 간질거림처럼 계절의 시간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고 차이를 찾아낸다면 그대는 진정한 풍류객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북한산과 인왕산은 이번 주말이 단풍의 절정일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의 수은주가 뚝 떨어진 것을 보니 단풍의 하산 속도도 빠를 것 같습니다. 이젠 덕수궁 돌담길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도 서서히 색을 바꾸고 있습니다. 도심 깊숙이 까지 내려온 자연의 시간을 점심시간만이라도 잠깐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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