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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3. 2020

타인의 얼굴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본다

새벽 4시 50분. 차를 운전해 출근을 합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이 가장 깜깜하다고, 올려다본 하늘엔 별도 총총 보입니다. 코로나 19로 차량 운행이 줄어 대기가 조금 깨끗해진 덕분일까요? 기온은 차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창문을 내리고 운전을 합니다. 봄부터 전 직원이 반반씩 나눠 한 달 휴업에 들어가고 한 달 일하는 형태로 근무하다 보니 업무 패턴이 많이 바뀐 덕에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아침 당직을 해야 해서 일찍 나섰습니다. 이른 새벽에 대중교통이 운행하기 전이라 제가 한 달에 유일하게 자동차로 출근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전조등 불빛만이 도로에 도열한 가로등 사이를 질주해 갑니다. 잠시 신호등에 붙잡혀 서있는 동안 어두운 바깥 덕분에 창문에 얼굴이 비춰 듭니다. 화들짝 놀랍니다. 내 모습에 흠짓 놀라다니, 지은 죄가 있는 모양입니다. 


잠시 창문으로 비치는 제 모습을 찬찬히 거울 보듯이 들여다봅니다. 이른 새벽이라 면도하고 세수만 하고 나오긴 했지만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 표정입니다. 얼굴 근육이 얼마나 긴장되어 있는지를 금방 눈치챕니다. 평소에 얼마나 얼굴에 인상을 쓰고 다녔는지 한순간 느끼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얼굴 근육들이 경직되어 있는 것을 남들은 저의 얼굴 형상으로 기억할 텐데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타인의 얼굴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본다"라고 합니다. 내 얼굴이 밝지 못했기에 타인의 얼굴도 밝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신호등이 빨간색인 틈을 이용하여 잠시 조용히 눈을 감고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을 주시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얼굴 근육을 찡그리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눈 주변 근육이 심하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그만큼 얼굴이 긴장되어 있다는 의미일 테니 참 삶이 답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가를 배운 바 없지만 호흡을 길게 하며 머리 꼭대기부터 긴장되어있는 기운을 가슴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얼굴로 내려오면서는 근육 하나하나에 힘을 풀어냅니다. 평온한 얼굴이 되도록 미소도 뗘봅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긴장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여 당직업무를 무사히 마칠 때까지 열심히 하면 다른 직원들이 안심하고 편한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근무에 임합니다. 또한 오늘도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온갖 마찰과 오해들이 있을지언정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옳게 다가오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도 아침의 이 평상심을 하루 종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평상심이 유지되어야 계절도 보이고 사람도 보입니다. 긴장된 조바심은 시야를 좁게 하여 주변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평상심으로 촉을 세우고 변화하는 하나하나까지 주시하고 살피면 세밀한 움직임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고 점령할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때는 자연과 일치되어 하나 됨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결론은 하나이지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지나쳐야 할 수많은 고뇌들이 있습니다. 알고 나면 허무한 것이 아니라 희열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계절이 주는 사색의 의미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계절의 대명사이지만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11월. 변화가 너무 대비되어 감히 변하는지 조차 알아채지 못합니다. 당연히 오는 줄 압니다. 그렇게 계절은 비도 내리고 서리도 내리며 서서히 바뀌어 갈 겁니다. 부담을 걷어낸 평상심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하나씩 점멸하며 사람이 보이고 자연이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존재의 이유와 사는 이유를 알게 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힘찬 하루가 시작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되는 게 세상사는 일입니다. 자동차 유리창에서 평상심을 건져내 오늘이라는 시간에 풀어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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