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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1. 2020

'기억'은 허상이다. 재조합만 있을 뿐

어제저녁엔 가까운 친척께서 운명하셔서 강남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교통체증의 대명사인 강남이라 퇴근시간 땡 하자마자 아예 전철로 움직입니다. 퇴근하기 전 지도 검색을 해서 지하철역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빨리 갈 수 있는지 검색도 해봅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하차하여 3번 출구를 찾아 나가면 바로 구름다리로 연결됩니다.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도 출구 숫자가 헷갈릴 것 같아  휴대폰에 지도를 다시 올려놓고 전철을 탑니다. 시청역에서 2호선을 타고 을지로 3가에서 갈아타니 고속터미널역까지 20여분밖에 안 걸립니다. 7호선 쪽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3번 출구라 한참을 걷습니다. 출구를 나가자마자 큰길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보입니다. 건너자마자 장례식장과 연결됩니다. 입구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해 QR코드로 개인정보 확인을 하고 체온을 재고 출입허가를 확인하는 번호가 찍힌 종이조각을 줍니다. 트렌치코트를 벗어 들고 검은색 넥타이도 다시 조여 맵니다. 정숙한 분위기로 호흡조절을 하고 빈소 안내판 앞에서 몇 번 빈소인지 재확인합니다. 상황판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제가 조문 온 친척 분의 신상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장례식장이 크니 빈소도 참 많네"라고 인지하면서도 시선은 계속 상황판을 주시합니다. 그런데 어? 상황판이 3번을 돈 것 같은데 제 친척분의 사진이 안 보입니다. 급히 불안해집니다. 분명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라고 문자까지 받았는데 말입니다. 휴대폰으로 문자 확인을 다시 합니다. 또박또박 "강남세브란스 장례식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상한데 날짜를 잘못 알고 있나?" 부고 날짜, 발인 날짜까지 재확인합니다. "문제가 있어 빈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나?" 불안과 궁금증은 증폭됩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치를 잘못 알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폭풍 검색합니다. 지도를 켜고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런 '강남세브란스병원'은 강남이긴 한데 매봉터널 앞으로 표시가 됩니다. "이게 뭐지? 나는 왜 강남 성모병원을 강남세브란스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거지?" 잠시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내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강남 성모병원을 찾아와 빈소가 없어졌다고? 나에게 빈소 위치를 전달한 사람을 탓한 상황이 한심스럽고 자괴감이 듭니다. 일단 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바깥 찬 바람을 쐬어 봅니다. "내 발길을 이렇게 무심히 이 곳으로 끌고 온 기억의 기재"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렇지만 일단 조문은 가야 합니다. 다시 전철역으로 갑니다. 3호선을 타고 도곡역까지 가서 다시 한티역으로 갈아탑니다. 그리고 진정한 '강남세브란스 장례식장'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곳 역시 QR코드 확인과 체온을 재고 조문을 허락합니다. 이승을 떠나는 친척분을 참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렇게, 쉽게 빨리 떠나보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두 시간여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왜 내가 장례식장을 잘못 찾아갔는지에 대한 실망과 회의와 자괴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 늙은 거야! 치매검사를 해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봐! 등등"자책까지 하게 됩니다.


"왜 저는 정말 한치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이 강남 성모병원으로 찾아간 것일까요?"

저의 머릿속에서는 '강남 성모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같은 병원으로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강남에 있는 병원으로 병문안이나 조문을 가면 거의 대부분 삼성병원이나 성모병원으로 갔지 강남세브란스는 평생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머릿속에 입력된 강남에 있는 병원은 당연히 삼성병원 아니면 성모병원이었던 것입니다.


기억의 실체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허상임을 말입니다. 인간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도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묶어 편집하는 것입니다. 저의 기억 편집에서는 강남에 있는 병원은 삼성병원과 성모병원으로 묶어서 기억의 저장고에 입력을 했던 것입니다. 강남세브란스라는 새로운 변수가 있었음에도 저의 기억의 묶음에는 들어오지를 못했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합니다. 어제저녁은 몸이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고생해서 그런지 정신도 마음도 많이 힘든 저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수 도 있습니다. 이젠 무슨 일을 하던지 꼼꼼히 다시 한번 확인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강화해 빼먹거나 잊히거나 오해하는 일을 최소화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레인 공부를 더욱 매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에서 하는 "특별한 뇌과학"공부를 땡땡이칠까 생각 중이었는데 심기일전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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