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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2. 2020

새벽길의 무게

                                                                                                                                                                          집을 나서는데 이슬비가 내립니다. 다시 들어가 우산을 가져올까 하다가 잠시 바깥을 주시합니다. 흩날리는 정도를 봐서는 맞고 가도 될 듯합니다. 우산 없이 걷기로 하고 전철역으로 향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이슬비가 비인지 안개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우산의 짐을 던 듯하여 마음은 가볍습니다.


한 계절이 다 가는데도 겨울의 대명사인 눈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는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저 기상이변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도 다른 겨울을 보내고 있기에 은근 걱정도 됩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겨울이 이렇게 춥지 않아도 되는 건가? 이러다 무슨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나 다른 것들이 불현듯 생기지 않을까 말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이놈의 날씨 때문에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핑계를 붙여봅니다. 오늘도 여전히 전철에서의 예의를 위해 마스크를 꺼내 씁니다. 

마침 전철 좌석이 한 자리 비어서 여유 있게 앉습니다. 어제와 다름없이 마주 보이는 앞좌석 일곱 자리에 꽉 차게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새벽 6시 반 전철 안을 차지하고 있는 풍속도의 인물들이 많이 변했음을 눈치챕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중년 이상의 노년층들이 주로 새벽 전철의 주인공이었다면 근래에는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를 했다는 점입니다. 매일매일의 풍경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의 변화는 확실히 젊어졌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젊은이를 새벽같이 불러내는 사회 구조의 변화일까요? 아니면 노년층의 자리까지 젊은이로 대체되고 있는 현상일까요?


 오늘 아침 전철 앞좌석은 모두 중년을 훨씬 넘긴듯한 어르신들이 앉아 계십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모두들 배낭을 하나씩 무릎 위에 올려놓으셨지만 등산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것 같지는 않은 모양 샙니다. 분명 새벽일을 나가시는 행색입니다. 이슬비 내리는 찬 새벽과 부딪히는 삶의 모질음을 한 순간에 보게 됩니다. 전철 앞좌석에 앉아 계신 일곱 분 어르신들의 모습이 짠하고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이 새벽에 저 어르신들과 함께 전철 칸에 앉아있는 내 모습 또한 같이 어깨가 움추러 듭니다. 별반 다르지 않은 동급의 모습일 테니 말입니다.


노년의 삶에서 여유가 빠지면 초라해지기 쉽습니다. 노년의 여유는 어떻게 다가오고 어떻게 가꿀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오늘 이른 아침 흔들리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일터를 향해가는 노구의 무게는 과연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감히 초라하고 애절하다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아침에 기꺼이 나서서 본인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역량을 보여줄 수 있기에 그나마 가능한 아침길일 겁니다. 행복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준비되고 움직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언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즐겁게 맞이해야 합니다. 생존을 바탕에 깐 처절한 움직임일지라도 우리는 그 용기에 힘을 더해야 합니다. 살아내야 하는데 어떤 포장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생명이 지닌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유로이 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기억은 삶을 사는 원기로 충분할 것입니다. '절대로(naver)'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던 청춘은 이제 '언제든'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여유로 세월을 맞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아침의 찬바람과 이슬비가 인생의 골목골목을 휘젓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청춘의 이상으로 훈훈했던 기억으로 덮여질 수 있기를 --- 그래서 노년의 여유가 우리의 이상으로 다시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폴 고갱의 그림 중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기원(origin)과 실존(existence)과 운명(destiny)을 묻고 있습니다. 새벽길-덜컹거리는 전철-무게의 배낭-노년. 산다는 것은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확률의 분포 곡선을 그려가는 것이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아닌지 ---

천재적인 화가가 고뇌했던 질문은 역시 현실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영상의 기온이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매섭게 차게 느껴집니다. 이 찬기운의 틈새를 막아주는 그대의 따뜻한 손길에 더욱 감사하고 고마움이 사무치는 아침입니다. 새벽일 나가시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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