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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8. 2020

너무 큰 것에만 감사했던 것은 아닌지

이 아침 눈뜸에 감사합니다. 하나 둘 켜지는 건너편 아파트 창문의 불빛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루 먼저 간 이가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고, 하루 먼저 간 생명이 폐 속 깊이 마셔보고 싶어 했던 차가운 공기의 상큼함도 맛보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아직 코로나 19의 습격을 받지 않고 이 아침 건강하게 버티고 있음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아침 내가 깨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찌 귀하지 아니하고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린 생명을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정적인 개념일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 조차도 사실은 생명의 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발 디디고 있는 건물의 뼈대조차도 철골과 시멘트의 조합이지만 모두 생명이 만들어낸 부산물입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는 전기 에너지는 화력발전소에서부터 석탄과 석유, 가스를 태워 화력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한 것입니다. 5억 년 전 고생대 석탄기 때 번성했던 양치식물과 동물군들이 묻혀 형성된 화석에너지를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 순간도 과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생명은 이어져 왔으며 그 증거는 나의 피와 뼈와 근육 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식물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 지구는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주의 원자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물질들을 조합해 단세포와 다세포의 형질로 진화를 시켰습니다. 사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가 만들어낸 형상물인 것입니다. 환경과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다양성이 생겼습니다. 한치도 거스를 수 없는 증거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모든 현상을 보고 느끼고 인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보존하고 있는 에너지는 앞으로 길어야 50년 정도 담고 있다가 본래의 곳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또 다른 생명의 분자로 다시 회귀될 테죠. 그렇게 생명은 전 우주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지금 순간순간을 자각하고 깨어있음에 감사하고 들리는 발자국 소리 리듬 하나와 스쳐 지나가는 향수 냄새의 은은함과 혀끝에 감지되는 따뜻한 차 한잔의 음미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에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세상에는 작고 하찮은 것, 보잘것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 만물은 위대한 것이며 위대했던 것입니다.


이 아침 편지를 받아줄 상대가 있고 기꺼이 읽어줄 정성들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밝아오는 바깥의 희미한 여명을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순간을 살게 해 주고 자각하게 해 줘서, 그리고 불금의 시간임도 상기시켜줘서 말입니다. 코로나 19로 집에 갇혀 있어야 할 주말이지만 그래도 떡뽂이 만들어 먹고 책을 읽고 영화를 몇 편씩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즐겁고 행복한 주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더구나 그대가 있어 더욱 가슴 설레는 이  아침이 주말에도 지속될 테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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