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13. 2021

맛은 입 맛이 아니고 오감 맛이다

저에게 아침 출근길 루트는 대략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물론 전철을 내려서 회사 건물까지 도착하는 경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출근시간의 생명은 시간입니다. 먼길을 돌아 돌아오는 경로야 무제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나 아침 출근은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시간에 맞춘 최적의 루트만을 다녀야 하는 것이 출근 경로의 한계입니다. 저의 출근길 경로의 변경은 전적으로 밖의 날씨와 연동됩니다. 날씨에 따라 출근길 루트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한겨울 추위나 비가 내리는 바깥 풍경 일 때는 2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환승을 해서 시청역 앞쪽 출구로 나옵니다. 그러면 전철역 입구 앞에 바로 회사 건물이 있습니다. 추위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비가 내릴 때는 비 맞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로입니다.


날씨가 맑고 쾌청한 날에는 1호선을 타고 옵니다. 1호선 시청역 출구 중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여명이 비친 시청 청사와 플라자호텔, 대한문의 정경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과 시청 별관 뜰을 지나 회사로 향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출근길 코스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길은 1호선 전철역을 내려 그냥 큰 대로를 따라 회사 건물까지 걸어오는 루트입니다. 걷는 시간상으로 짧은 동선이지만 휙휙 지나가는 차량들만이 보이는 무미건조한 루트입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애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 무미건조한 루트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경로 중간에 있는 베이커리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빵을 구워서 그런가요? 빵집이 멀리 있음에도 냄새로 먼저 위치를 알립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출근하는 습성 때문에 그런지 빵 굽는 냄새는 파블로스의 개처럼 본능적으로 발길과 시선과 침샘까지도 자극합니다.

그런데 그 냄새가 빵의 맛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향일까요? 아니면 맛과 향이 섞인 이미지일까요? 빵 하면 약간 갈색으로 잘 구워져 구수하면서도 그 안에 습기가 남아있어 식감이 좋은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방금 구워져 나온 소라 모양의 크루아상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그 이미지에 빵에서 나는 냄새가 덧붙여지고 입안에 넣었을 때 미뢰에 전해지는 맛의 조화가 그 빵의 전체적인 맛을 결정하게 됩니다.


오감이 작동해야 음식에 대한 맛의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오감 중에 어느 하나를 작동시키지 않는다면 빵의 맛과 이미지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빵의 향인 냄새를 못 맡게 후각세포로의 접근을 차단시키려 코를 막았다고 하면 빵은 그저 갈색의 탄수화물에, 맛도 배합된 소금이나 파우더의 용량에 따라 짜거나 달거나 한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빵의 습기 차이에서 오는 식감 정도만이 빵의 존재를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그동안 알고 있는 빵의 전체 맛과 연결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감기가 걸려 코가 막히면 음식 맛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잠시 책상 위에 놓인 녹차 잔을 들어 코를 막고 한 모금 입에 넣어봅니다. 무슨 맛일까요?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따뜻한 물일 뿐입니다.

사람의 오감은 그만큼 사물의 존재를 파악하는데 절대적입니다. 오감 중에 하나라도 고장이 나거나 막히게 되면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겁니다. 들어오는 정보의 차이를 일으켜, 오감이 온전히 작동했던 예전 입력 정보와 다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물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오감이 사람의 관계로 까지 오면 상위의 관계 개념인 제6의 감각까지 작동됩니다. 미러 뉴런의 활성화입니다. 상상의 영역이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옵니다. 영역이 바뀌면 영역의 차원에 맞게 재해석됩니다. 위치와 운동의 두 영역을 동시에 알 수 없지만 둘 중 하나가 존재할 확률의 분포는 정확히 알 수 있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똑같습니다.


이 글을 마주한 그대와는 오감에 더하여 제6의 감각까지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6의 감각은 종합편입니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여야 이 마지막 감각을 깨울 수 있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아니 보지 않아도, 그대의 존재를 생각만 해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존재, 그대 거기 계신 거죠?

작가의 이전글 휴지통에 버려지는 글이 아니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