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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4. 2021

코로나 19, 추위를 추억으로 소환하다

지난주 내내 영하 15를 밑도는 기온 덕에 오늘 아침 영하 3도의 기온은 그저 안 추운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요? 따뜻하다거나 포근하다고 표현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지금 심정은 그런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온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호모 사피엔스의 일원으로 매일 아침 기온으로 일희일비하는 간사함에 화들짝 민망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아침마다 출근하며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온도는 일상을 시작하는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얼굴에 닿는 기온이 정말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지, 차갑지만 시원한 정도인지, 얼굴 피부가 느끼지 못할 정도인지, 후끈한 기분이 들 정도인지에 따라 하루의 기분을 좌우합니다.


차갑다고 느껴지면 하루를 긴장하고 시작합니다. 몸이 움츠러들면 마음까지도 움츠러들게 됩니다. 선선하다고 느껴지면 어깨도 펴지게 됩니다. 하루를 의기양양하게 시작합니다. 또한 더운 기운으로 느껴지면 어깨도 처지고 마음도 느슨해집니다. 바로 감각이 생각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백화점 명품 브랜드 판매원은 고객들에게 명품을 만지고 매어 보게 한답니다. 장갑 끼고 조심스럽게  만져야 할 것 같고 눈팅으로만 봐야 할 것 같은 고급 브랜드 매장일수록 고객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면 판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랍니다. 자동차 딜러도 마찬가지랍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전시장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유명 딜러는 자동차 손잡이를 헤어드라이기로 따뜻하게 해서 고객이 차 문을 열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답니다. 이렇게 감각이 생각을 지배하는 현상은 비즈니스 현장에도 잠입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겨울은 추워야 합니다. 사계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모두 발휘해야 계절로써의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 겨울은 그런대로 제법 눈도 많이 내리고 기온도 한파라고 하는 영하 10도 이하로도 여러 날 내려가고 해서 겨울다운 겨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시즌은 역대 겨울 중에 춥지 않았던 겨울로 기록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빙어축제와 같은 강원도 축제들이 어름 두께가 얕아 치러지지 못하고 연기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온 변화는 인간의 행동 양태까지도 바꾸었습니다. 아니 인간은 온도의 변동 폭에 당연히 영향받을 수밖에 없고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를 변화시키기에는 인간은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온도를 상향시키는데 인간이 일조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의 대기 온도를 올리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화석연료로부터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석탄으로 석유로, 암석으로 저장되어 있던 이산화탄소를 마구 대기로 풀어놓고 있는 장본인이 인간입니다. 자연도 어쩌지 못하는 singularity가 오기 전에 인간의 지혜를 모아야 할 이유입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야기하려면 과거를 소환해야 합니다. 어려서 정말 추웠던 기억들이 김장김치에 무 박히듯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어서 기억 속에 생생한 그런 추위가 말입니다. 겨울 논에 물을 대고 얼려서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썰매를 타던 기억, 스케이트 대신 나무에 철사를 대고 타던 앉은뱅이 썰매와 나무토막으로 높이를 한층 높여 발을 올리고 서서 타는 외발이 썰매를 타던 기억도 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설경의 태백산 능선에서 돗자리를 깔고 미끄럼 타며 내려오던 산행과 시립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나온 아침이 영하 23도나 되어 한참을 가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갔던 추위도 있습니다.


추위의 기억이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으로 되살아 납니다. 추워야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입니다. 어쩌면 내 생에 다시는 경험해 보지 못할 추억의 페이지로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꼰대의 전형이라는 "Latte is a horse!!(나 때는 말이야)"를 주절대고 있습니다. 추억이 꼰대의 넋두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고 재해석되는 현재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젠 추억을 이야기하면 꼰대의 고리타분함으로 비칩니다. 과거가 현재와 단절되어 벌어지는 현상 같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광을 이야기하니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겁니다.


추억도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추억도 여유가 있어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 여유가 있다는 것은 이미 발생할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상황 전개를 예측하지 못하면 절대 여유로운 자세를 견지할 수 없습니다.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는 매의 시선과 오랜 경륜이 집약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나옵니다. 여유라 함은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순서를 알고 있기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고 방향이 잘못되어 간다 싶으면 조정을 하면 됩니다. 여유는 백과사전 같은 지식의 보고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종합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추위에 대한 기억의 소환도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입니다. 무척이나 추웠던 기억의 소환으로 잠시 추위를 잊었나요? 예전에 비하면 요즘 기온은 추위도 아니죠? 지금은 춥지 않으시죠? 코로나 19로 집과 사무실에 갇혀 지내온지 어언 1년이 되었습니다. 덥고 추울 때는 사무실이 최대의 피한지이고 피서지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1년 넘게 갇혀 지내다 보니 칼바람 쌩쌩부는 스키장의 얼얼함과 얼굴 피부에 감각을 무디 게하는 동해바다의 검푸름으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도 아직은 더 참고 버텨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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