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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1. 2021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 아침 문득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어 "잘 일어났어?" "출근 잘하고 있어?" "아침 식사는 했고?"라고 무심히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요? 한 집에 사는 가족이야 뭐 묻지 않아도 당연히 알아야 되니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중등학교를 비롯해 대학교 등 학연을 비롯하여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까지 내가 아는 모든 인연을 동원하여 이 아침에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대상을 묻고 있는 겁니다.


용건과 용무 없이 이 아침에 부담 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허심탄회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감히 불가능한 도전입니다. "이 새벽에 전화해서 갑자기 잘 잤냐고 물어보면 내 신변에 이상이 있다고 느낄 텐데 괜찮을까?" "급전이 필요한데 말도 못 하고 안부만 묻고 전화 끊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뭐 이런 걱정과 불안이 앞섭니다. 전화를 하기 전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정말 친한 관계가 아닙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이지만 전화를 할 때는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니 이런 이른 새벽에는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예절을 들이대겠지만 그래도 출근길에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대단한 관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아침에 무심히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친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당연히 어떤 용무가 있어서 걸었을 겁니다. 그럴 경우는 '영혼 없는 안부 묻기'로 시작됩니다. "회사 어렵다는데 잘 이겨내시고 계시죠?" "소식 들었습니다. 좋을 일 있으시다고요?" 등등 이 영혼 없는 안부 묻기가 길어질수록 사실 용건이 큰 경우가 많답니다. 중요한 부탁의 무게만큼이나 영혼 없는 안부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불안해집니다. 분명 어떤 부탁이나 요청이 있으니 전화를 했을 테니 말입니다. 답변이 짧아집니다. "아 네" "그렇죠 뭐" "잘 지내고 있죠" "네 알겠습니다" 정도의 단문으로 대답을 하고, 빨리 전화를 끊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섭니다. "제가 회의가 있어서요" "사장님께서 찾으셔서 이만" 등등 이유까지 달아 전화를 내려놓습니다. 뭔가 찜찜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용건을 들어줄 걸 그랬나?" 걱정이 앞섭니다. 괜히 기분만 나쁘게 전화 끊은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하루 종일 그 영혼 없는 전화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진짜 가까운 사람은 용건과 안부중 하나만 말하고 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용건 없이 안부만 묻습니다. 진짜 친한 사람을 가르는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에 의하면 "생각이 행동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행동을 함으로써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라고 합니다. 용건과 용무가 없어도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보고 끊으면 "뇌에서 재미있는 착각"을 한다는 겁니다. 긍정적인 착각을 말입니다. "나를 정말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이 아침에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보다니"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응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덕수궁 지나고 있는데 3년 전 같이 왔던 기억이 나서 전화했어"라고 들으면 오히려 전화받는 사람이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진답니다.


용건이 없고 용무가 없어도 말을 걸어주고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사소한 것 같지만 배려있는 행동 하나가 가까운 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화들짝 깨닫게 됩니다. 이 아침 나는 무심코 전화를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감히 밝힐 수 없습니다. 아예 없을 수 도 있을 테고 너무 많아 고민스러울 수 도 있을 테고 그럭저럭 전화 정도 해볼 수 있는 몇몇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화를 들어 안부를 묻는 것보다 이렇게 매일, 아침 글로 그대를 만나고 주변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전하고 있으니 무심한 전화보다 백배 만배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매일 이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와 사랑의 하트를 뿡뿡 날려주시는 그대는 최애의 친구 관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대 있어 행복한 아침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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