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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2. 2021

펜이냐 키보드냐?

기록을 할 때 어떤 도구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요즘이야 데스크톱 컴퓨터나 태블릿 PC, 심지어 휴대폰 문자 저장 기능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도구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만 필기의 도구 연필, 볼펜, 만년필 등이 득세하던 시절이 30년 전 정도 된 듯합니다. 83년도 대학 입학하여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것이 EDPS 였습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컴퓨터 언어를 배우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는 수준이었는데 그나마 학교에 컴퓨터가 몇 대 없어 종이에 프로그램 차트를 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휴대폰에 녹음 기능까지 있고 녹음된 파일을 글로 풀어 종이로 인쇄까지 해서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해 있으니 굳이 기록을 하는 의미가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던, 종이에 펜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 기록의 중요한 방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떤 도구에 더 익숙하신가요? 펜을 들고 써 내려가는 습관에 익숙하신 분도 계실 테고 손가락이 기억하는 자판의 위치를 현란하게 움직이는데 익숙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떤 방법이 더 좋고 나쁘다의 우열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을 한다는 상황은 같지만 각각의 기능이 따로 작동합니다. 펜으로의 기록은 느린 도구의 사용이라 심사숙고해서 정리할 때 유용하며 키보드의 기록은 직관적으로 나열할 때 적절한 도구입니다. 물론 키보드 사용에 익숙한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정도 가지고는 차라리 손으로 쓰는 것이 월씬 빠를 테니까요.

아주대학교 김경일 심리학과 교수는 "펜과 키보드중 어떤 것을 사용하느냐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라"라고 조언합니다. 펜을 사용했을 때와 키보드를 사용했을 때 나중에 기억을 회상하는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펜의 기록은 속도에 문제로 인하여 핵심위주로 중요한 것만 적어 나가게 된답니다. 반면에 키보드 사용으로 인한 기록은 들리는 대부분의 내용을 계속 나열하여 적어나갈 수 있기에 나중에 인출 단서를 많이 얻을 수 있어 세세한 기억을 끌어내기에 유리하답니다.


강의 청강이 되었던, 회의의 기록이 되었던 내가 그 시간에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상황을 활용할 것인지에 따라 기록의 도구도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강의실 분위기와 회의 상황에 따라 사용 도구에 제한을 받기도 할 테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일상을 기록하는 이런 글쓰기에는 키보드가 제격입니다. 속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장과 단어의 지우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빠르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종이에 펜으로 써서 매일을 기록한다면 휴지통에 버려진 잘못 쓰거나 맘에 안 들어 찢어진 종이가 수북할 겁니다. 그나마 책상 위에 남아 있는 글 중에도 시뻘겋게 돼지꼬리 붙어 있는 단어와 문장이 혼재되어 있는 종이가 대부분일 거고요.  키보드로 기록된 문서는 검색하기도 쉽고 빠릅니다. 종이를 뒤적여 과거의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요즘은 상상도 안 되는 불편함으로 다가옵니다.


유용한 도구의 사용을 진화시켜온 호모 사피엔스는 똑같이 손가락을 사용하여 기록하는 도구조차도 이렇게 급격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펜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을 사용하여 쥐게 되고 키보드는 열 손가락 모두를 사용해야 하기에 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항변을 해볼까요? 


그렇다고 해도 펜으로 쓴 손 글씨의 매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캘리그래피의 확산도 손으로 쓰는 글에 대한 향수일 겁니다. 하지만 손으로 쓴 글의 매력은 글체에 그 사람의 감정과 태도까지도 실려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글씨체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까지도 넘겨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도구로 사용하느냐가 이렇게 사람의 심성까지 좌우합니다. 자세를 바꾸면 생각이 바뀝니다. 마찬가지로 도구를 바꾸면 심성도 변할 수 있습니다. 책상 속에 쓰지 않던 만년필이 있는지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잉크가 다 말라 있을 테죠? 오늘 한번 꺼내서 깨끗이 닦고 잉크도 보충해 보시지요? 그리고 하얀 종이 위에 생각을 써내려 가보시지요? 하루가 정리되고 계획되는 차분한 시간으로 유도할 겁니다.


코로나 속 불금입니다. 펜으로 기록되는 차분한 주말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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