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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3. 2021

멍 때리기,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일

부처님 오신 날인 19일,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이색적인 영화 한 편이 상영될 예정이랍니다. 제목은 '메가 릴랙스-불멍'으로 모닥불이 타는 모습만 30분간 보여준답니다. 영화관 이벤트로 진행되는 것으로 관람료 6,000원에 커피 한잔도 준답니다. 커피 한잔 값에 영화관에 앉아 대형 화면에 비치는 모닥불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온전한 휴식을 하라고 유혹입니다.


"이게 뭐지? 코로나로 힘든 극장가에서 아이디어를 내다 내다 이젠 이런 영화까지 상영하는 거야?" "이런 것도 영화라고 할 수 있나?" "이벤트로는 참신한데 뭐. 커피 한잔 값에 가서 30분 자다오면 되겠네" 반응도 다양합니다. 일단 관심을 끄는 영화관 이벤트로는 성공한 듯합니다.


소위 '멍 때린다'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는 뜻입니다. 장작불이 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불멍도 있고 하얀 파도 부서지는 바다를 쳐다보는 바다멍도 있고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는 물멍, 어두운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는 달멍도 있습니다.


분주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서 잠시나마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현상이지 싶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으면, 얼마나 주변 소음에 시달렸으면,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이런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걸까요? 조금은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도 듭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현실과 현장의 늪이 그만큼 깊은 까닭일 겁니다.

하지만 멍 때리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몇 분이나 있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인간 브레인의 사고 체계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하기에 억지로라도 아무 생각 안 할 수 있는 것처럼 환경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멍 때리기에 앞서 한 생각 부여잡고 집중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은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명상을 하고 좌선을 하며 한 생각, 화두 하나 붙잡는 일조차 생각대로 되지 않아 무수한 수도자들이 나가떨어졌습니다. 한 생각 잡고자 하면 잡생각이 무수히 치고 들어옵니다. 온전히 한 생각 붙들기는 정말 힘듭니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사피엔스 진화에 있어 잡생각의 번뇌가 생존을 이어온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에 빠져 멍하게 있다가는 생명에 위협을 당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숙명입니다. 잡생각의 발화는 이렇게 한없이 주변을 경계하던 시절 브레인에 각인된 현상입니다.


그래서 멍 때리기는 고도로 진화된 인간에게서나 시도할 수 있는 '내려놓기'의 한 방편입니다. 잡념을 쉽게 떨쳐낼 수 없기에 모닥불 타는 모습과 바다의 파도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묘한 편안함을 느껴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게 합니다. 잡념이 없어지면 브레인도 조용해집니다. 편안해집니다. 브레인이 작동을 멈춘 듯 하니 에너지 소비도 없는 듯 느낍니다. 멍 때리기는 그렇게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서 편해지려는 물리적 속성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멍 때리기는 리듬입니다. 장작불이 춤을 추듯 흔들리는 것도 리듬이자 파동이며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파문도 연한 리듬입니다. 밀려오는 하얀 파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멍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그 자연의 리듬에 몸과 마음, 브레인이 함께 공률 한다는 것입니다. 멍 때린다는 것은 그 자연의 리듬에 나를 맞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안해지고 휴식이 찾아옵니다. 세찬 바람에 휙휙 날리는 장작불을 보고 불멍을 하지 않고 폭풍우 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멍을 하지는 않습니다. 리듬이 다르고 그 거친 파동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공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점심시간 잠시의 '꿀잠'과 같은 휴식과 호숫가 벤치에 앉아 일렁이는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의 눈부심을 붙잡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잠시 쉰 브레인이 더욱 한 생각에 집중하여 업무 효율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조직에서 인정받는 존재로 계속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멍 때리기를 위해 꿀맛 같은 산책을 하고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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