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n 02. 2021

맑은 하루의 시작을 보는 시선

눈뜨면 맞이하는 아침의 분위기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합니다. 흐린 날은 기분조차도 꿀꿀해지고 맑은 날은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깥 날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이 '감정의 날씨'입니다. 바깥 자연과 내가 공진화합니다. 한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부 환경에 심지어 맞추기 위해 마음을 바꾸기까지 하는 것은 아닌지, 감정의 미묘함은 그만큼 예민합니다.


오늘 이 아침은 어떠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바깥은 그야말로 햇살 눈부신 청명의 세상입니다. 구름도 적당히 흘러가고 기온도 적당히 서늘하며 햇살 또한 화사합니다. "이보다 좋은 자연의 날, 자연의 시간은 흔치 않을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닌데 나는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러야 좋은데, 지금 바깥은 그저 그래. 구름도 많고 옅은 안개도 끼어있는 거 같고 그다지 썩 좋은 날씨 같지는 않은데"라고 느끼시는 분도 계실 테고요. "낮에 엄청 더울 것 같아. 긴 팔 옷을 입고 나왔는데 더우면 어쩌지? 뭔 놈의 날씨가 기온차가 이렇게 심해. 날씨에 맞춰 옷을 입을 수가 없네"라고 오히려 불만이 있으신 분도 계실 겁니다.


바깥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진대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으로 바라봅니다. 천차만별의 현상으로 비쳐 보입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이 아니고 너도 맞고 나도 맞는 현상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날씨를 자기화'하여 마음과 감정에 투사합니다. 그러면 날씨가 내 안의 감정을 조율하는 조율사가 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일까요? '맑고 좋은 날씨로 받아들인다'라고 이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감정과 마음이 들떠 오히려 실수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집니다. 지금 바깥 날씨를 그저 그런 평상심으로 바라보면 마음까지도 평상심을 유지하여 오히려 차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뭐야? 어쩌라는 거야? 날씨를 좋게 보고 좋게 해석하라는 거야 아니면 날씨를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라고 반문할 수 도 있습니다. 마음과 감정이라는 높은 언어의 유희를 일삼는 소피스트의 궤변과 같을 겁니다.


감정은 전적으로 언어의 발로입니다. 감각이 모여 감정의 단초를 제공하지만 결국 감각을 해석하는 것은 언어의 능력입니다. 언어의 능력은 '의미'에 있습니다. 현상을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전적으로 언어가 작동하여 생각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내 안의 언어에 효과를 덧입히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날씨와 나는 상관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모든 외부 현상, 오감으로 전해지는 날씨의 모든 감각들이 나를 만들고 나를 있게 하고 나를 생각하게 하며 나를 행동하게 합니다. 

전철을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철길 옆 공간에 심어진 꽃들의 선명한 자태를 봅니다. 넝쿨장미는 그 붉은빛을, 해당화는 분홍빛을, 찔레꽃은 흰색을, 붓꽃은 보랏빛을 --- 녹색 풀과 나무 사이사이로 정말 환상적인 '맑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전철 창문이 잘 조경된 botanical garden 창문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세상 밖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 자연이 준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이냐는 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꽃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내 눈을 발견합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하고

흘려지나 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꽃들이 아니라 수만 송이 피어있지만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환희를 만날 수 있는 눈입니다. 


보이는 꽃의 경계도 살짝 넘어가 봅니다. 보이지 않으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인다는 것이 단지 사람의 시선이 인지하는 범위라고 정의한다면 시선 밖의 세상은 없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시선의 경계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한계라는 것이며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이 범위의 개념은 우주론에서는 '사건의 지평선'이며 철학에서는 사유의 한계로 표현됩니다. 증명되고 검증되는 것을 확인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수학이라는 상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숫자로 표현하여 증명을 해냅니다. 놀라운 능력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눈으로 보이게 하는 개벽 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미 검증된 수식을 통해 새로운 수식을 만들어내고 또한 미지의 세계를 수식으로 풀어 보여줍니다.


그래서 수학은 유니버설 랭귀지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영역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시선과 사유의 폭은 그래서 넓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날씨의 맑음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니 지금 기온이 19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움직이기 참 좋은 기온입니다. 활기찬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창의성'은 손가락 끝에서 나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