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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3. 2021

개똥 피하려다 발목을 삐다

출근길에 발목을 삐끗했습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7분여 남짓합니다. 아파트 정문을 나와 이웃 다른 아파트 옆 코너를 두 번만 돌면 바로 전철역입니다. 이 길을 20년 넘게 걸었으니 눈감고 가도, 몇 걸음 앞에는 뭐가 있는지 코너를 돌면 덩굴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지, 전철역 가까이에 있는 자투리 땅에 심긴 감자에 꽃이 피었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반복된 행동으로 인해 출근길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굳이 예측할 필요도 없이 몸이 움직입니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집을 나서며 와이어리스 이어폰을 귀에 꽂습니다. 그리고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되어있긴 하지만 아직 뭉게구름이 잔잔히 깔린 틈 사이로 비치는 아침해의 주홍빛 빛깔도 올려다봅니다. 어제 낮에는 더웠는데 이 아침은 선선합니다. 반팔 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조금 차가운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춥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상쾌함이 선점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컨디션을 조절하며 보무도 당당히 전철역을 향합니다. 저희 아파트를 나와 이웃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첫 번째 코너를 돌고 두 번째 코너를 도는 순간, 발 밑에 시커먼 물체가 언 듯 시선에 들어옵니다.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밟지 말아야지 하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오른발을 확 틀어 디디는 순간, 걸음걸이의 리듬이 깨지면서 몸이 기웃 둥 오른쪽으로 치우칩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발목이 시큰합니다. 접질렸습니다.  잠시 서서 발목을 돌려가며 근육을 풀어봅니다.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만 약간 쩔뚝거리며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이게 뭐야? 발걸음을 헛디디게 한 물체는 도대체?" 뒤돌아봅니다.

개똥입니다. 

"아 제길, 어떤 교양 없는 인간이 길 모퉁이에 개가 똥 싸도록 놔둔 게야 XX"

"뭐야? 유기견일 수 도 있나? 이 개 노무 시키"


개똥 안 밟으려다가 발목을 삔 것입니다.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도 그렇지만 그 원인이 개똥이라는데 더 신경이 쓰입니다. "아 드러! 재수 없게" 아침 출근 분위기가 완전히 개똥으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밟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쩔뚝거리며 천천히 전철역으로 걸어갑니다. 평소 계단을 걸어 플랫폼으로 갔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갑니다. 개똥이 아침의 행동 루틴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친다"는 현상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연 속에도 벼락같이 등장하는 이벤트임을 눈치챕니다. 사실 다친다는 것이 예견되면 다치지도 않을 겁니다. 당연히 피해 갈 테니 말입니다. '다친다'라는 사건은 그렇게 우연히, 불현듯 다가오는 악마의 손길입니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사고를 내고 싶고, 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도된 사고는 사고가 아니고 사건입니다.


예고 없이 불현듯 닥치기에 사고가 됩니다. 예측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휴대폰 보며 계단 내려가다가 계단이 끝났음에도 계단이 하나 더 있는 줄 알고 발을 헛디디는 경험을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발목 다치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측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브레인 안에서 벌어지는 명령입니다. 예전에 그랬으니 지금도 그렇게 하면 괜찮아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예측 앞에 장애물이 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개똥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순간 당황을 하게 되고 회피 본능이 발동합니다. 이 회피 본능이 몸으로 실행되면 균형을 잡지 못해 삐끗하는 현상이 됩니다. 브레인의 명령과 몸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입니다.


그래서 세상 살면서 '운'이라는 녀석이 언제나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어느 순간 덜컹 달라붙는 자석과 같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아침 개똥을 안 밟은 것은 그나마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발목을 삐끗한 것은 운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이 아침에 개똥이 코너 길 중간에 있을 것이라는 나쁜 운이 있었지만, 피하느라 발목이 시큰거리지만 그래도 발목 부러지지 않고, 넘어져 개똥 뭉개지 않은 것만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개똥처럼  '불운'으로 오기도 하지만 넘어지지 않는 '행운'으로 오기도 합니다. 발목은 시큰거리지만 그나마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렵니다. "개똥 밟아 그 더러운 냄새 풍기며 전철을 탔을걸 생각하면 오히려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발목이 붇지는 않는 걸 보니 근육을 조금 풀어주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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