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n 07. 2021

인생은 '줄 잘 서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잘한 일에 상을 주는 것 중에 최고는 노벨상일 겁니다.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세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과 같은 과학분야에서는 독보적입니다.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이래 과학상 수상자는 2019년까지 616명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노벨 과학상에는 발을 못 디디고 있습니다. 일본은 24명이나 배출하고 있죠. 수상자 숫자로만 본다면 미국 271명, 영국 90명, 독일 70명, 프랑스 34명 순입니다.


2012년에 영국의 BBC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캐릭터를 취합해 공통점을 분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구성과를 분석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수상자가 되기 위한 어떤 공식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수상자들의 평균을 내보니 나이는 60세, 봄에 태어났고 미국인이고 하버드를 나왔고 안경을 쓰지 않았으며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천재, 열정, 열성, 약간의 행운 정도의 단어가 추출되었습니다.


BBC 말고도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것,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거나 작동했는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재능이면 재능, 인간미면 인간미가 좋은지 조차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상자들을 분석하는 수많은 연구와 인터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대부분의 결론 중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겸손' '유쾌함' '창의성' '협업' '행운'입니다. 그리고 많은 조언들도 등장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끈기와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둔감함을 가져라" "한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깊게 생각하라"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다른 관점, 다른 분야의 시각을 받아들이면 뛰어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등입니다.


당연하고 뻔한 결과들의 나열입니다. 꼭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들입니다. '겸손'과 '유쾌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상을 수상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데 당연히 대부분 겸손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상을 받았는데 우울해하는 사람 없고 유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인터뷰 한 사람들을 통해 핵심을 끄집어내지 못하고 겉만 보고 결론을 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니 이 단어들이 정답일 수 있습니다. 다양성 속에 보편성을 띤 공통점을 찾아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스쳐지나가는 단어가 있습니다. '행운'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들한테 Serendipity라는 단어는 말도 안 되는 단어일 수 있습니다. 평생을 과학 한 분야에 몰두하여 성과를 이루어냈는데 그것이 행운이라니?  수상자들이 그저 겸손하게 말하는 것을 폄하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상자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이 "right time, right place"였답니다.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의 연구소에서 줄줄이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그 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던 뛰어난 과학자나 동료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겁니다. 속된 말로 '줄 잘 섰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선 줄 잘 서는 경우는 "훈련소 가서 줄 잘 서서 후방으로 배치된다"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과학분야에서 줄 잘 서면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의 인식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right time right place'는 말 그대로 행운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있다 보니 그 자리에 우연히, 그 시간에 우연히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장소와 공간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내가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존재하는가가 평생의 방향을 정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느냐가 평생 직업을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그 장소, 나의 평생 직업을 결정하던 바로 그 젊은 어느 날이 지금의 내가 있는 바로 이 장소에 있게 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속에 서 있을까요? 지금 있는 이 장소 이 시간에 만족하고 있는가? 되물어봅니다. 앞으로 나의 미래에 지금 이 시간과 이 장소가 바탕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시간'에 확연히 정신 차려 깨어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언제가 올 그 미래의 시간에는 오늘 이 시간이 serendipity 같은 순간이었음을 겸손하고 유쾌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바꾸려면, 공간을 재배치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