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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8. 2021

'숨겨진 욕망'의 해방구-SNS

우리는 용어를 혼동하기 때문에 개념이 흔들립니다. 단어가 지닌 정확한 뜻을 파악해야 개념이 잡히고 문맥의 모듈로써 작동하여 스토리로 연결됩니다. 용어의 정확한 용례를 모르거나 헷갈리면 전체 문장이 무너집니다. 


욕구와 욕망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뜻 아닌가?" "두 단어 모두 무언가 하고 싶거나 가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할 때 쓰는 거 아닌가?"


사전적 의미의 욕망(欲望)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란다"라는 뜻이고 욕구(欲求)는 "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정의해 놓고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개념 정리입니다. 비슷한 표현의 다른 단어일까요? 사전 정의도 이러할진대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헷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들여다보면 좀 더 명확히 단어가 의미하는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욕구(needs)는 뭔가 부족한 것이 생긴 상태를 지칭하고 욕망(wants)은 부족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픈 것은 욕구의 상태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이나 빵을 욕망합니다. 욕망의 원인이 욕구인 것입니다. 


들여다보면 너무 복잡한 듯합니다. 그냥 '원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 들여다볼까요?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욕망하는가? 결국 내게 부족한, 그 무엇을 욕망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거나 이루어놓은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게 없는 모든 것을 욕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욕망하는 그 무엇에는 가치가 따라붙어야 합니다.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절대 욕망하지 않습니다. 이 욕망의 가치는 관계 속에서 나옵니다. 상대가 있다는 겁니다. 비교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가 있는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의 '숨겨진 욕망'을 간파하는 것이 협상술의 핵심입니다. 협상의 기술은 포커페이스에서 나옵니다. 절대 자기 패를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밀당을 통해 좀 더 유리한 조건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때 상대방의 숨겨진 욕망을 꺼내 펼쳐 보이고 그 욕망에 맞추어 적절한 조건을 제시하면 십중팔구 원만한 협상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숨겨진 욕망"은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만 스스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누군가 그 숨겨진 욕망의 트리거를 건드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쑥스럽게도 먼저 말씀을 하시니까 말인데요"하면서 대화를 이어받아 가게 됩니다. 협상의 해결이라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방의 욕망을 먼저 건드리는 것입니다.

이 '숨겨진 욕망'은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숨겨진 욕망에 대한 표출의 해방구가 SNS입니다. SNS에는 대부분 맛난 음식, 멋진 장소, 예쁜 옷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자랑질이 본질입니다. "나도 이렇게 멋진 장소에 가봤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어. 부럽지?"가 본질입니다. 면전에서 대놓고 자랑하기에 쑥스럽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에서의 자랑질은 거리낄 게 없습니다. 숨겨진 욕망을 마구 쏟아내도 뭐라는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부러워합니다. "와우 대단해! 그런 곳에 가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다니. 나도 가보고 싶어" 이 한마디가 듣고 싶은 겁니다.


이렇게 숨겨진 욕망을 충동질하는 대화에 중독되게 되면 계속 좀 더 멋진 곳, 맛 난 음식을 찾아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게 됩니다. 인생 사진 촬영지라는 곳을 찾아가서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어 공유합니다. 점점 극단으로 달려갑니다. 벼랑 끝에 앉아 목숨 걸고 사진을 찍습니다. 숨겨진 욕망은 이렇게 목숨을 걸만큼 간절한 것이 됩니다.


사실 욕망은 인간 행동의 에너지입니다.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힘이 나게 하는 원천입니다. 이 에너지의 원천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나는 욕망을 가지고는 있는 것인지 되물어 봅니다. 숨겨놓은 욕망이 있다면 하나씩 천천히 끄집어내어 실행에 옮겨봐야겠습니다. 타인이 나의 숨겨진 욕망을 건드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욕망을 펼쳐내 봐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인생 잘 살고 있고 잘 버티고 있다고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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