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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6. 2021

하수와 고수의 차이

하수와 고수를 구분하는 경계가 있을까? 참 애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딱 보면 고수인지 하수인지 구분할 수 있다. 참 묘한 일이다. 분위기와 뉘앙스만 가지고도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다니 말이다.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나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고수(高手)라 한다. 하수(下手)는 수준이 낮은 재주나 솜씨를 지닌 사람이다.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는 딱 보면 안다.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숨길 수가 없다.


물론 고수도 단수가 있다. 바둑에 5단, 6단도 있고 입신의 경지라는 9단이 있듯이 말이다. 단수가 높을수록 아랫 실력자가 펼치는 행보를 낱낱이 꿰뚫고 있다.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예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수는 바로 미래 예측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이 고수와 하수들이 쓰는 전략 중에 고수들만이 쓸 수 있는 전술이 있다. '고졸(古拙)의 미'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궁궐 건축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와 같은 의미다. 하수가 이 기법을 사용하면 누추하고 사치스럽게 보이지만 고수가 사용하면 검소하고 사치스럽지 않게 보인다. 고수가 쓰면 기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고수와 하수의 차이다.

'고졸의 미'를 절정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조선의 다완(茶碗)이다. '기자에몬 이도 다완'으로 찻잔이다. 16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51년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됐다. 하수의 눈에는 그저 막사발이다.

어찌 하수가 고수들의 엄청난 기법을 읽어낼 수 있을까만은 이 다완을 표현한 유명한 문구 중에 "아무것도 없다. 자신마저 비워낸 그릇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을 수 있다. 누가 어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선을 달리한다. 그렇다고 하고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세상에 대한 해석이다.


하지만 다완을 보고 있는 내 눈은 아무런 기교도 읽어낼 수 없다. 하수의 눈높이는 어쩔 수 없다. 일본에서 조차 국보로 지정했고 모두들 극찬을 마다하지 않으니 명품을 못 알아본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저 대단한데'정도의 감탄사를 뱉어낼 뿐이지만 나에겐 아무런 감흥도 멋도 '고졸의 미'도 보이지 않는다. 나 같은 하수에게는 화려하고 휘황찬란해야 멋있게 보인다. 이것이 고수와 하수의 차이인가 보다.


하지만 미학에서 이야기하는 '감각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아름다움으로 볼 때 '고졸의 미'는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단순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고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힘, 그 묘한 시간 끌기에서 벌어지는 끌어당김과 머뭇거림의 복합현상에 아름다움으로 덧입혀진다. 고수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이다.


고수는 바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갖 것에서 찾아내는 사람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 사물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보고 끄집어내는 사람이다. 책상 위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에서 생명의 윤회 현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고수가 되어보자. 삶을 들여다보자. 세밀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백지의 의미를 찾아내 단아한 수묵화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한다.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는, 자연의 흐름을 읽는 일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일이다. '고졸의 미'를 느끼고 깨우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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