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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8. 2021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설마 설마 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최종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 종류는 갑상선 악성종양 (Malignant neoplasm of thyroid gland)입니다. 크기는 0.6mm입니다.


사실 암이라는 판정은 지난주 금요일 담당 의사 선생님을 뵙고 들었습니다. 이달 초 6일 날 갑상선 초음파 검사와 세침 조직검사를 했고 그 검사 결과가 지난주 나왔던 겁니다. 지난주 병원에서 마주한 담당 의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듯(아무래도 암이라는 말을 했을 때 환자가 받아들일 충격 때문에 생활화된 말투와 톤을 장착하신 듯합니다) "초기에 조직 검사 잘하셨네요. 3년 전 0.3mm였는데 0.6mm로 조금 커졌고 악성인듯하니 수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과 선생님 상담 날짜 잡아드릴게요"라고 하십니다. 3년 전에는 크기가 너무 작아 조직검사도 할 수 없는 상태라 그동안 지켜봐 왔던 것입니다. 종양크기가 작은 초기상태여서 그런지 그동안 어떠한 증상도 느껴지거나 한 적이 없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들어서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는데 막상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은 그냥 평온했습니다. "그렇군. 수술하면 되지 뭐" 정도의 생각밖에는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제 외과 수술 담당 의사를 만나고 다음 달 26일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3박 4일 입원하고 암 조직이 있는 오른쪽 갑상선을 절반 정도 절개하겠다고 합니다. 수술은 오른쪽 어깨와 목 사이를 2.5cm 절개하니 흉터를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암과의 조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갑상선 결절로 인한 암 정도는 암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병명이 암이지 수술로 제거하면 되는 정도입니다. 내 주변에도 이 갑상선암 발견으로 수술한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심지어 같이 근무하는 여직원분은 저하고 똑같은 위치에 결절 크기도 비슷해서 몇 년 전 수술을 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병원, 같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수술을 했더군요. 너무 흔해져서 공포를 주지도 못하는 암으로 전락한 것이 갑상선암입니다.


어제 주변의 여러 지인들께 암 판정 사실을 카톡 메신저로 알렸습니다. 두 가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요즘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야. 수술하면 돼"정도의 위로와 "그래도 암이라는데 치료 잘하고 마음 추스르고 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의 위안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집에 있는 식구들에게는 사실을 알리는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와이프에게 검사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갑상선 결절이 조금 커져서 수술하는 게 좋다고 해서 수술 날짜 잡았어"정도로 말입니다. 별거 아닌데 별일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여 걱정할 것이 더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암 판정을 받고도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3년 동안 갑상선 결절 상태를 지켜봐 왔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어떻게 변할 것이고 커지면 어떻게 기능할 것이며 등 말입니다. 뭐 그동안 10년 가까이 뇌과학 공부를 하는 과정 중에 분자세포생물학도 틈틈이 들여봤기에 세포 내 돌연변이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3년 전 건강 검진하고 갑상선에 0.3mm의 결정이 보이니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받고는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3년 전, 건강검진을 하고 결과 리포트를 받았는데 CD도 한 장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나이가 60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밀검사대상이라 매년 세밀한 조사들을 추가해서 검사를 해줍니다. 특히 홍보실 직원들은 회장님의 특별 지시에 의거 매년 내시경 및 정밀 검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도 매년 하다가 별 이상 징후가 없어 그 해는 살짝 땡땡이 차원에서 건너뛰기로 하고 초음파 검사를 신청했습니다. 초음파 검사는 5년전에도 한 바 있었는데 예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낭종이 작아졌다는

정도의 언급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초음파 검사에서는 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의사 소견이 붙어 왔던 것입니다. 의료센터에서 전화까지 왔습니다. 초음파 검사 영상 CD를 같이 보내줄 테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악성으로 의심되는 오른쪽 갑상선 결절은 크기가 0.3cm로 작지만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권유였습니다.


의료센터 담당자와 전화를 끊고 나니 잠시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결절의 크기와 증상에 관계없이 "악성 결절로 보인다?" "암 아니야?"로 마구 상상과 염려와 걱정의 수준으로 생각의 확대 재생산이 이어졌습니다. 잠시 심호흡을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제 내면을 통해 다시 한번 심성을 들여다봤습니다.


당시 전공과목이 다르긴 하나 성형외과를 하고 있는 친구 녀석에게 결과물을 사진 찍어 보내봤습니다. 친구 녀석이 웃습니다. 석회화된 것 같은데 너무 크기가 작아 조직검사도 안된다고 ---- 그저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추적 검사받는 정도로 지켜보면 된다고 --- 그랬는데 3년이 지나 수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점쟁이를 찾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뭔가 조급한데, 어떤 의사결정과 결과의 진행이 궁금한데 한마디 던지는 것이 마치 정답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변에 의지하게 되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겁니다.


사실 의료센터 담당자한테 전화를 받은 이후 갑자기 오른쪽 갑상선이 있는 목의 쇄골 쪽이 아픈 것 같습니다.

골프 치고 나서 삐끗한 목 오른쪽 통증까지도 갑상선 때문에 그런 것으로 확대 해석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거야?"로 말입니다. 손으로 만지면 뭔가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것 같고 오른쪽 뼈도 더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갑자기 갑상선 결절로 인한 통증과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이젠 진짜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 정말 아픈 것으로 결론을 냅니다. 암 환자들이 왜 빨리 죽는지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환상과 최면을 걸어 스스로 무너지는 형국을 보게 됩니다. 3년전 0.3mm 크기의 결절발견이후 현재까지 갑상선으로 인한 어떠한 증상이나 느낌을 경험하거나 체험헤보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3년 전, 강북삼성병원 갑상선암센터에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했습니다. 그렇게 갑상선을 추적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통증과 고통은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통증은 생리이고 고통은 심리입니다. 통증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고통은 대뇌피질이 담당하는 고유기능입니다. 통증은 조절할 수 없지만 고통은 심리적인 것이라 문화가 결정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병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문화에 따라 고통의 표현과 습득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우리는 암이라는 치명적 질병의 공포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발전한 사회입니다. 암 -> 발병 -> 사망의 공식과 치유 확률의 적음으로 고착화된 고통의 심리 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름 체중관리(오늘 아침 68.4kg)도 하고 쉬는 날이면 10km씩 조깅도 하고 주말이면 골프도 하고 윗몸일으키기 100개, 팔굽혀펴기 30개 정도씩 5세트 정도는 하는 수준으로 건강을 관리해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암 판정으로 "나이 듦"이라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매년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 들면 1년 전과 같은 신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3년 치 숫자가 그대로 보여줍니다. 1년 전, 2년 전, 3년 전보다 나아진 숫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유일하게 체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체중과 관련된 숫자들만 현상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60년 가까이 썼으니 오래 쓰긴 했을 테니 보링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전혀 관계없는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운동도 안 했으면 다른 신체기관에서도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을 겁니다. 고통보다는 위안으로 병을 들여다봅니다. 그래야 남은 시간, 더 알차고 적극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아플 것이라고 지례 짐작해 심리적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통이 문화적인 것이라면 충분히 희망으로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받으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암이란 돌연변이 녀석도 들어왔다가 알아주지 않으니 제풀에 사라질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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