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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9. 2021

병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다

그저께 병원에서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어제 온 천하에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인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을 비롯하여 페이스북, 그리고 여기 브런치에까지 암 판정 사실을 알린 것이다. 하루 종일 진정 어린 염려와 격려의 문자와 전화들이 빗발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기에 주변에 그저 담담히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괜히 암 판정 사실을 공표하는 엄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하루 만에 들었다. 너무나 많은 문자와 전화로 인하여 오히려 내가 암에 빠져들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나는 3년 전 건강검진 시 발견된 갑상 선내 0.3mm의 결절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올해는 크기 변화도 알아볼 겸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0.6mm로 커져 있어 세침 조직검사까지 같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갑상선 악성종양 판정이었다. 3년을 지켜봐 왔기에 결과가 그렇다는 것에 별 충격이나 감흥이 없었다. "그렇군. 조금 커졌네. 수술해서 제거하면 되지 뭐"정도로 받아들였다.


"너무 쿨한 척하는 거 아니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쿨한 척하는 게 맞긴 하다. 그렇지만 경과를 3년 동안 지켜봐 왔고 3년 동안 온갖 상상의 증상을 발현시켜 들이대어봤기에 막상 최종 판정을 손에 받아 들고 나니 특별한 느낌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로 그렇게 다가왔음을 확인해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에 공표한 암 판정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심각한 것으로 환생을 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것이다. 바로 많은 지인들의 염려와 걱정들이 하루 종일 쇄도하다 보니 "내가 정말 죽을병에 걸린 거 아닌가?"로 잡념의 생각이 넘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진정성이 나에게 넘어와서는 공포를 끄집어내는 화약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아니야. 잘 될 거야"로 다지고 다져놓았던 장벽이 하루 종일 계속되는 지인들의 염려로 인하여 장벽이 두터워지고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는 말하는 사람의 수사학이 아니고 듣는 사람의 심리학이다"라는 강원국 작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바로 단어 사용의 반복으로 인해 잠재되어 있는 위험과 불안의 공포를 들춰낸 때문이다. '암'이라는 부정적으로 내재화된 단어의 힘에 의해 자꾸 불안 쪽을 향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심리가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에고 어떻게! 잘 이겨내야 할 텐데! 잘 될 거야 힘내고!.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래!"등 말하는 사람이 위로의 말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듣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를 되뇌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이 의미를 갖기 시작해 '어떤 일'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바로 "병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암이라는 현상이 있는데 증상을 염려하여 살을 붙이고 드라마틱한 걱정으로 크기를 키운다. 암이라는 크기는 0.6mm인데 이미 크기는 중요치 않은 사실이 되어버렸다. 초기 발견으로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 팩트도 사라져 버렸다. "너 암에 걸렸다며 어떻게"로 감상과 감정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암은 현실의 세계를 넘어 어두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고 많은 지인들의 염려와 격려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너무도 고맙다. 그래도 세상 살면서 잘 살고 있구나를 이렇게 몇몇 사건을 겪고 보면 드러난다. 그 격려와 위안을 받아들이는 내가 해석을 엉뚱하게 하고 감추고 억눌러왔던 공포를 끄집어내는 트리거로 되살아남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도 출근을 하고 아침밥은 안 먹었지만 약속된 점심식사 잘 먹을 거고 저녁에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책 2쇄 인쇄했다고 축하해주는 모임에도 가서 소고기를 먹고 폭탄주도 몇 잔 마실 거다. 그런다고 암이란 녀석이 하루아침에 1cm로 커질 건가? 그래 봐야 한 달 후에 도려낼 건데 뭔 걱정인가. 세상은 그렇게 흐르고 나는 아무 일 없는 상태로 또 하루를 살 거다. 이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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