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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2. 2021

약한 사람은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 중에 시인의 눈이 제일이다. 인간의 감성을 제일 심층까지 들여다보고 언어로, 글로 표현해내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아봐야 뭐하겠나, 타인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면 말이다. 혼자 환희에 차면 뭐하겠나, 모두가 같이 즐겁고 기뻐야지. 그런 점에서 시인은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 글로 표현해 전하는 전령이다.


문학적 감성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깊은 향유가 있어야 드러낼 수 있다. 세밀하게 살아있는 감각과 느낌과 의식의 세계를 표현해낼 수 있다. 들어있지 않으면 끄집어낼 수 없다. 화분수같이 나오는 듯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고 은유로 감추어진 정갈한 표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로 밤을 지새웠을까 말이다. 펼쳐 든 시 한 줄이 그냥 나오고 읊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시 한 줄은 애끓는 간절함을 연필 끝에 모아야 겨우 종이 위에 한 글자 적실 수 있는 피와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시 한 줄 만나고 나면 심금을 울리고 가슴 절절해 무릎 꿇게 만든다.


몇 주 전 모 인터넷 매체에 전 문화부 장관이신 이어령 선생님을 만난 기사(아래 참조)가 실렸다. 글쓴이가 이어령 선생님과의 개인 친분으로 인터뷰는 아니지만 췌장암 말기를 보내고 계신 근황을 담담히 소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선생님께서 언제 타계할지 몰라 생전에 인터뷰를 할 작정으로 찾아갔다가 병환이 깊은 모습을 보고 인터뷰를 포기했다고 한다. 사진 함께 찍자는 말도 못 꺼냈단다. 눈에 선하다. 어떤 상황에 계신지. 인터뷰를 했다는 글보다 더 절절했다.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인문학 천재이심은 자명하다. 타고난 문학적 감성의 소유자이시기도 하지만 엄청난 정보를 섭렵하기 위해 집필실에 컴퓨터가 6대나 켜져 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누가 감히 그 지식의 바다를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기사 내용 중에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한 대목이 가슴에 사무친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약한 사람은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어릴 때 동네 개구쟁이들이 싸움박질할 때 결코 울지 않는다. 그러다 엄마가 나타나면 그때서야 으앙! 하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다. "약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암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니 눈물도 흘릴 수 없다"라는 뜻이라고 글쓴이는 주석까지 달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바로 일주일 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하게 암 판정 사실을 만인에 공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겁나고 무서워서 그랬구나" "어떻게든 암이라는 사실을 회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엄마를 만나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강해졌다.


이어령 선생님 말마따나, "환자가 가장 예민하게 모든 것을 관찰한다. 환자는 때로 의사도 의심한다"라고 한다. 딱 이 표현이다. 암이라고 진단받고 판정받아보니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 한 잎에도 의미를 가져다 붙인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세밀해진다.


예민해지는 만큼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것일까? 집착은 화를 부른다. 편향을 부른다. 세밀해지는 감각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 방향이 침체되지 않도록 끌고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리기로 했다. 약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좀 더 오랫동안 그 풍부한 지성의 상상력을 세상에 내놓으셨으면 좋겠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더라고 결코 글과 펜을 놓지 않겠다고 하시니 안심이 된다. 죽음이 도적처럼 닥치면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겠다는 호기가 오히려 든든하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지성은 세상의 끝을 마주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의 정석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나는 눈물을 흘리고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부딪혀 보자. 




형형한 눈빛의 천재 이어령과 '눈물 한 방울' http://www.mediavil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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