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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8. 2021

모나리자를 울려버린 반가사유상 미소

소리 내지 않고 방긋이 웃는 모습. 미소(微笑).

이 미소의 백미를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그것도 한 번에 2개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정말 흔치 않은 기회다. 반드시 가봐야 한다. 지난 12일부터 삼국시대 유물 중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같은 공간에 전시 중이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루브르에 있다면 한국의 미소는 용산에 있다.


나는 오래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홀로 전시되어 있던 83호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홀렸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와 대영박물관을 갔을 때도 일부러 조각상들의 미소만을 찾아다녔다. 특히 동양의 불상들을 모아놓은 전시실은 구석구석 찾아가 봤지만 박물관 어디에서도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능가하는 작품은 보지 못했다. 겨우 찾은 것이 모나리자의 미소라고나 할까? 


두 점의 반가사유상 모두, 주조기술이나 조형미가 탁월함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나는 이 반가사유상 미소에 반했다. 온화한 얼굴 속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의 조화는 청동불상 안의 부처의 심상까지도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과연 어떤 순간을 표현해 냈을까? 번뇌에서 해탈을 보는 찰나의 순간에 번진 미소일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다 달아 모든 것을 깨달은 이후에 보이는 미소일까?


표정은 심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그 이심전심의 표정 속에서 미소의 역할은 온화함과 평화와 깨달음이다. 화나고 불안하고 복잡한 심상에서 미소가 나올 리 없다. 그렇다면 반가사유상 얼굴에서 나오는 미소는 분명, ' 다 알았다'는 표정의 반증이다. 알고 났더니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희열, 그렇지만 소리 내어 웃을 일까지는 아니었다는 자제감까지 담고 있다. 얼굴 표정 속의 절묘한 미소가 아닐 수 없다. 저 미소가 없이 밋밋한 표정으로 만들어졌다면 그저 잘 만든 불상일 뿐이다. 미소가 반가사유상의 존재를 살렸다.

반가사유상을 만들었을 무명의 제작자는 분명 부처의 그 심경을 눈치챘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미소를 흙으로 빚어내지 못한다. 경험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을 어떻게 흙으로 빚고 밀랍을 붇고 다시 흙을 붙이고 밀랍을 녹인 공간에 청동을 부어, 철에 생명을 표현해 낼 것이며 심지어 가는 미소까지 번지게 할 것인가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붓으로 미소를 그렸지만 한국의 불상 제작자는 쇠로 미소를 만들었다. 누가 더 능력자인지는 자명하다. 다 빈치는 한 수 아래다.


미소는 여유다. 깨닫음의 표현이다. 알듯 말듯한 게 깨달음이고, 알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미소와 깨달음은 동의적 표현이다. 말로 할 순 없지만 알 수 있는 것. 보여줄 순 없지만 보면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미소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가? 썩소를 날리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 얼굴 근육을 이완시키고 온화한 표정으로 은근한 미소로 전환을 시켜보자. 마음도 차분해지고 세상이 밝게 보이기 시작한다. 참 좋은 구름이구나! 참 좋은 차가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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