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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2. 2021

사전을 넘겨 본 적이 언제지?

생각과 사고의 시작은 언어다. 언어는 단어로 나열된 문장이다. 단어는 개념이다. 개념은 뜻과 정의가 있다는 것이다. 매타버스의 세계다. 없는 것을 만들어 있게 하는 가상 개념의 공간이다. '그렇다'라고 정의 내리고 그 정의를 공유해야 비로소 단어로, 문장으로 뜻이 통하여 소통이 되고 사회를 꾸려가는 밑바탕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획득한 최고의 형질이 바로 언어의 사용에 있다. 언어의 본질은 통용이다. 말하면 모두가 똑같이 이해하고, 들으면 모두가 같은 의미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국소적(Locality)이다. 지리적 경계에 따라 집단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경계를 넘어가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내 생각과 의지를 언어로 전달할 수가 없다. 언어가 국지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언어는 만들기 쉽고 집단내에서 통용되면 사용할 수 있다. 말은 있는데 글이 없는 소수 부족이 얼마나 많은지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부족은 알아들을 수 도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은 부족 간에는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언어가 더 좋고 나쁘냐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어는 계속 의미를 바꾸어 달기도 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형이상학적 생각을 표현해내고 통용시킨다. 구성원들 간에 통용되기만 하면 언어로써의 기능은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어의 통용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작금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고등학생까지 갈 것도 없다.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해를 못 하는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주로 문장을 구성하는 첫 단어의 첫음절을 따서 만든 줄임말 신조어들이다. 스마트폰 세대들이 휴대폰으로 서로 문자 대화를 하다 보니 짧고 빨리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통용된다. 


"나 짐 버정인데 어디삼? 영통은 됨? 나 땜에 마상 입었다며? 집으로 가는 길인데 댕댕이델꼬 놀이터로 나오삼!" 


뭐 이 정도 문자 전송을 훔쳐봤다면 그래도 대충 이해는 할 수 있다. 읽어도 내용이 찝찝한 사람은 아직 줄임말을 자주 접하고 듣지 못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 '아아 주세요'라고 하는 '아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것은 이미 만천하가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해 있다. 단어가 통용되어 언어의 세계로 들어오는 현장을 이렇게 매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줄임말 신조어의 등장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눈치채면 그냥 방관할 일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정교한 사고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문자임은 자명하다. 아무리 영상시대라고 해도 보고 듣는 것을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해 전달하는 문해력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올봄에도 조선일보에서 '말뜻을 모르는 아이들'이라는 기획특집을 연재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문상(問喪)을 '문화상품권'의 줄임말로 이해하고 '도장공 모집 광고'를 "태권도 잘해야 갈 수 있어요?"라고 반문했다는 기사였다. 최근에는 EBS에서 문해력을 묻는 실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계속적으로 문해력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대 간의 소통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래집단이나 특정 집단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이 있어 왔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소적 단체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확산되어 사회 전체의 언어로 등장을 하게 됨에 따라 의미의 혼동까지 불러온다.


신조어의 등장을 지적질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계속 생성되고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어의 뜻이 담고 있는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면 언어와 문장으로의 기능은 없는 것과 같다. 내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화와 글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기능인데 이 첫 번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단어의 뜻을 서로 다르게 알고 있거나 아예 모른다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책장에 먼지 쌓여 꽂혀있는 영어사전, 국어사전, 옥편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와 휴대폰 안으로 들어온 두꺼운 사전이지만 가끔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가끔이라도 일기 쓰듯 글을 쓸 때 책상 옆에 놓아두기라도 해 보자.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사전 한 가득 들어있으니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 든든해질 것이다. 손때 묻은 사전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글 쓰는데도 자극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사전이라고 하니 나폴레옹의 "내 사전엔 불가능은 없다"의 사전으로 오해하여 읽지 않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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