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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4. 2021

맛은 기억이다

오늘 아침은 어떤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가요? 커피? 녹차? 블랙티? 둥굴레차? 그중에서도 원두커피? 에스프레소? 길거리 테이크아웃 커피 중 따뜻한 아메리카노? 달달한 라테?


만인만색의 선택에 따라 아침 차를 손에 들게 됩니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안 좋아져 아침에는 커피를 안 드시는 분은 다른 차를 드실 테고 잠에서 깨자마자 커피머신을 돌려 원두커피 한잔을 마주해야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저도 매일 출근을 하면 컴퓨터를 부팅하고 회사 메일을 체크하고 탕비실에 들러 커피포트에 물을 끓입니다. 온수가 나오는 생수기가 있음에도 항상 포트에 물을 올립니다. 이것도 습관입니다. 물이 끓는 동안 항상 마시는 것이 있습니다만 잠시 오늘은 바꿔 마셔볼까 고민을 합니다. 눈앞에 커피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도 네스카페 에스프레소 캡슐커피도 있고 일회용 인스턴트 맥심 오리지널, 부드러운 블랙 오리지널, 크림과 설탕이 섞인 믹스커피를 비롯하여 차 종류도 현미녹차, 둥굴레차, 옥수수수염차, 메밀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 책상 한 구석에는 싱가포르 TWG 나폴레옹 블랙티도 있고 사과와 파인애플, 복숭아를 잘게 썰어 만든 과일차도 있습니다. 오늘은 머그잔에 어떤 것을 넣었을까요?


오늘은 커피만 들어있는 일회용 맥심 오리지널을 선택했습니다. 아침에 주로 선택하는 커피입니다. 프림과 설탕이 들어있는 일회용은 안 마신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몸에 안 좋다니 안 마시는 수준입니다만 가끔 무의식적으로 크림 설탕 들어간 믹스커피를 손에 집어 들기도 합니다. 사실 회사 건물 1층에 '탐앤탐스' 전문 커피숍도 있어서 출근하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사들고 올라올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여러 차례 내려가서 커피를 마시는터라 아침에는 커피숍에 안 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커피맛을 잘 모릅니다. 다들 스타벅스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폴 바셋 커피도 좋다고 합니다만 저는 아무리 마셔봐도 구분을 못하겠습니다. 스타벅스 커피도 그저 다른 전문점보다 조금 부드러운 정도라는 것을 느낄 뿐 "와우! 최고인데"정도로 평가할 수준은 안됩니다. 일회용 커피나 스타벅스 리저브 커피나 저에게는 그놈이 그놈입니다.


오늘 아침 많이 종류의 커피 중에서 맥심 오리지널을 집어 들었던 것은 바로 맛은 습관과 문화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맥심 커피는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커피입니다. 40년도 더 된 70년대 중반 국민학교 시절, 옆집에 사시던 아주머니가 미국 LA에 친척을 만나러 가셨다가 귀국길에 큰 유리병에 든 맥심 커피를 사 오셔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커피가 뭔지도 모를 시절이었고 맛 도 모를 어린 나이었습니다만 그 당시 가루가 아닌 입자형 맥심 커피의 모습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커피 하면 저에게는 맥심이 최고로 보였습니다.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도 없고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추억의 한편에 자리 잡은 맥심 커피가 나이 들어서도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맛은 추억을 소환하는 트리거였기에 무심코 손에 집어 들었던 겁니다.


저에게 아침의 맥심 커피 한잔은 글을 쓰다가 문장이 이어지지 않으면 잠시 커피 한 모금 입에 물고 이어질 문장을 생각하게 하는 정류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정류장에 어떤 커피, 어떤 차가 있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각과 문장을 이어 줄 연결고리의 역할로 담겨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오랜 추억과 생활 습관과 그동안 지나온 나의 과거가 버무려진 맥심 커피였을 뿐입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다시 탕비실에 가서 물을 끓여 차 전용 유리병에 물을 담을 겁니다. TWG 블랙티 찻잎을 넣고 거름망이 있는 반대편으로 물을 흘려보내 찻잎을 우려낼 겁니다. 물색이 옅은 갈색에서 점점 짙어져 가는 색의 변화를 조용히 지켜봅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시작될 업무의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겨 갑니다. 바쁜 하루가 되겠지만 차 한잔으로 차분하게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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