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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5. 2021

낙지도 아프다는데 해물탕 먹을 수 있을까?

날도 추워지니 뜨끈한 해물탕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조개, 꽃게, 새우, 미더덕, 대구, 주꾸미 그리고 해물탕에 빠지면 섭섭한 전복과 낙지까지 넣고 초록의 미나리와 팽이버섯까지 올려 고춧가루 양념을 얼큰하게 해서 팔팔 끓여낸 해물탕은 추운 계절에 제격인 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해물탕을 끓일 때 보통 식당에서는 해산물의 싱싱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살아있는 전복과 낙지는 맨 마지막에 냄비에 넣는 이벤트를 합니다. 전복과 낙지를 제외하고 모든 재료가 들어간 해물탕이 한소끔 끓고 나면 뚜껑을 열고 살아 꿈뜰대는 전복과 낙지를 집어넣고 재빨리 뚜껑을 닫습니다.


이 장면에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대부분 해물탕을 먹으러 온 사람들은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 끓고 난 후 냄비 뚜껑을 열고 잘 데쳐진 낙지를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고추냉이 갠 간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먹습니다. 발버둥 치던 낙지의 모습은 데친 낙지 맛에 묻혀 버립니다. 산 낙지까지 주문하면 잘라진 다리가 꼬물거리는 접시가 테이블에 오릅니다. 얼마나 역동적으로 잘라놓은 다리들이 움직이느냐로 낙지의 신선도를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기력 회복에 좋다느니, 정력에 좋다고 까지 확장시키며 입안에 넣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신문 지면 귀퉁이에 영국 정부가 문어, 게가 고통을 느끼는 존재여서 동물복지법안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와 바닷가재, 게 등 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로 판명됐고 영국 정부가 동물복지법안의 보호대상으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겁니다. 산채로 삶지 말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전기 충격으로 통각을 마비시킨 뒤 삶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사실 통증과 고통은 다른 개념입니다. 통증(痛症, pain)은 몸에 아픔을 느끼는 증세로 생리적인 것이고 고통(苦痛, suffering)은 심리적인 것입니다. 통증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고 고통은 대뇌피질이 해석한 감정입니다. 통증은 즉각적 감각 반응이라 조절할 수 없지만 고통은 심리적인 것이라 사회가 만들고 문화가 결정하는 현상으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문어, 오징어가 고통을 느낀다고 판명한 것은 바로 통각 수용체가 뇌 특정부위와 연결되어 있는지 조건들을 연구한 끝에, 고통을 느낀다는 '아주 강력한' 증거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문어의 교감능력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문어 '파울'이 점쟁이로도 유명했습니다. 우승팀을 포함해 8번이나 경기 결과를 모두 맞히기도 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먹느냐는 것은 사실 문화적 습관입니다. 개고기를 식용으로 먹는 것에 대한 논란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고 이제 개는 식용으로 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먹거리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인류사회에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윤리,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때 특별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만이 채식을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지금은 채식 위주의 식습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유명인들의 비건(vegan) 실천으로 더욱 확산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eonix)는 철저하게 비건을 실천하며 동물권을 비롯한 환경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었던 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와 레옹에 어린 소녀로 나왔던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도 대표적인 비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동물로 보지 않는다'는 동물보호법 예외조항 때문에 물고기 등 많은 동물들이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식생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바꾸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를 가져가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식용으로 하는 동물이라도 부당하게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는 모두들 공감을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의 식습관 중에 활어를 먹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낙지와 문어의 고통을 모르척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먹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쳐오는 많은 생물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골고루 잘 먹는 것이 건강의 첩경이지만 그 과정에 만나게 되는 생명들의 순간도 그저 맛에 묻히지 않기를 말입니다. 맛있게 먹되,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 지금 내가 음식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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