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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4. 2021

목에 칼이 들어오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다

12월 3일(금) 오후 1시. 드디어 수술대에 올랐다. 병실에 이동용 침대가 오고 간호사가 이름을 묻고 어떤 일로 입원했는지, 혈액형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손목에 두른 인식표와 맞는지 재확인한다. 이 재확인 과정은 수술실로 들어가기까지 6~7차례는 계속 확인을 한다. 마취 담당 선생님을 비롯하여 수술실 번호를 확인하는 간호사까지 반복 반복 재확인을 한다. 항공기 조종사들이 입력명령을 복창하는 일과 같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습관 같은 재확인이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병실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고 머리에 하늘색 수술용 캡을 쓰고 이동용 침대로 옮겨 누웠다. 침대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들어간다. 입원 병실이 8층인데 수술실은 2층이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이동용 침대가 들어가니 천장이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 모습이다. 누워서 바깥을 보는 듯하다. 지금 바깥이 저 모습일까?


잠시 후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다른 수술 환자 침대가 들어온다. 오늘 같은 시간대에 술하는 여자 환자다. 수술 대기실에서 수술 과목은 간호사가 물어 무어라 답하는데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갑상선 수술은 아닐 테고, 저분도 오늘 수술 잘 마치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빈다. 수술 동기인데 잘 되어야 하지 않겠나.


수술실 배정을 6번 방으로 받았다. 간호사에게 지금 몇 시인지 물었다. 1시 반 지나고 있단다. 그리고 이름과 입원 사유와 혈액형을 또 묻고 손목 인식표를 확인하고 수술실로 이동한다. 천장에 커다란 조명들이 배치되어 있고 머리 쪽에는 확대 현미경도 비치되어 있다. 담당의사 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은 수술실 한편에서 CT 촬영 사진을 놓고 최종 상의를 하시는 듯하다. 다시 한번 이름을 묻고 수술대에 발목을 고정시키고 상체도 고정시키는 일들이 진행된다. 손가락에 신체기능을 탐지하는 도구들이 끼워진다. 그리고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마취 농도를 말씀하시고 입에 호흡기를 단다. 전신마취다. 여기까지가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지 기억되는 상황이다.

3시 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다. 정신 차리란다. 정신을 차리려 눈을 깜박이는데 목에 강한 통증이 온다. 너무 아프다. 수술 후 눈을 뜨고 내뱉은 첫마디가 "너무 아파요"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것이라 기도 확보 차원에서 목에 삽관을 해서 그렇단다. 진통제를 넣고 있으니 잠시 참으란다. 그리고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지난밤 12시부터 금식을 했는데 수술시간이 늦어져 거의 15시간 동안 물을 못 마시고 있었던 때문이다. 물을 조금 달라고 하자 2시간 지나서 가능하다고 참으라고 한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라와 보니 휴대폰 문자로 수술 준비 중 시간, 시작시간, 종료시간, 회복실 이동시간, 병실 이동시간 등 시간대별로 알려주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같이 보낸 문자인 모양이다.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이 그나마 이 문자라도 받고 안심했을 듯하여 다행이다.


진통제를 맞고 있어서 그런지 목의 통증은 잠시 잊히고 있다. 생살을 째고 한쪽 갑상선을 절개해 드러내고 다시 꿰맸을 테니 안 아픈 것이 이상할 것이다. 입안이 마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물은 2시간 지나서 마시라고 했지만 생수병에서 한 모금 입에 넣고 입안을 적신다. 꿀맛이 이 맛일까? 사실 맛도 모르겠다. 물을 갈구하는데 물이 입안에 있어 좋을 뿐이다. 물을 목으로 넘기는데 통증이 온다. 이런 제길, 이제부터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한다.


어쩌겠는가? 누가 대신 아파줄 통증이 아니다. 내가 견디고 내가 줄여야 할 고통이다. 통증이 고통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버텨내야 한다. 떼어낸 신체부위가 아물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일이다. 조금씩 신체가 적응을 해나가면 통증은 사라질 것이다. 감각적 아픔도 차츰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약 기운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지만 링거를 떼어내고도 통증을 감당할 정도는 될 테다. 물리적 통증이야 어쩌겠는가 약으로 잊히게 만들고 줄이면 될 일이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갈 일들을 하는데 진력할 일이다. 지금처럼 어제 일을 하나씩 정리해 쓰는 것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행위다. 그렇게 다가가고 맞이할 일이다.


참 퇴원을 월요일 오전에 하란다. 3박 4일 일정에서 하루가 더 늘었다. 수술을 어제 오후에 진행하느라고 경과를 좀 더 지켜보고 주치의 선생님이 일요일인 내일 퇴원하면 얼굴도 못 보고 갈 텐데 하루 더 있다가 서로 인사라도 하고 헤어지잔다. 그래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월요일 퇴원하면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맞이해주라.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훌훌 털고 찬바람 부는 거리를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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