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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6. 2021

신체기능 재부팅 중

갑상선암 수술을 마치고

3박 4일에 걸친 갑상선암 수술을 마치고 어제 오전에 퇴원을 했습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주치의 선생님도 뵙고 퇴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월요일 퇴원의사도 물어왔는데 어제 오전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병원에 들러주셔서 퇴원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주셨습니다.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시고 상태가 좋다고 하십니다. 수술부위를 여기저기 살펴보시고 붓기도 없고 하여 상태는 양호하다고 열흘 후에 외래에서 얼굴 보자고 하신 덕에 하루 먼저 병원을 나섰습니다. 병원비 수납은 신용카드 등록을 한 터라 창구에 들르지 않아도 자동 정산하여 휴대폰 문자로 알려줍니다. 220만 원가량 나왔군요.


4일 동안 돌봐준 간호사들하고 인사를 하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라고 "다시는 얼굴 볼 일 없을 것"이라고 공표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1층 로비에 내렸는데 일요일 오전 9시 반이라 로비에 창구에 앉아있는 직원 외에는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리볼빙 도어 바깥에 눈부시도록 내리쬐는 햇살이 뒷 풍경을 가립니다. 현관문을 나서 햇살을 맞으며 심호흡을 해봅니다. 찬 바람이 폐부로 한껏 들어오는 듯합니다. 쳐다본 하늘은 수술실로 가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바라본 바로 그 천정의 그림과 똑같습니다. 흰 구름이 듬성듬성 떠가는 청명한 파란색입니다. 어제를 살다 간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하늘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하늘을 맞이했습니다.


10시 반 가족들의 환영 속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캐리어를 정리하고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신체 기능이 점점 다운되는 느낌입니다. 병원에서는 계속 수액에다 진통제다 비타민제, 때로는 항생제를 그때그때 처방을 해서 멀쩡한 줄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전에 퇴원할 때도 비타민제 수액을 한병 맞고 나왔습니다. 거실 소파에 누웠는데 점점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옵니다.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도 얼음물에 담그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쌍화차를 데워서 먹고 방에 전기담요를 깔고 누웠습니다. 1시간이 넘게 있었는데 한기는 가시지 않습니다. 바닥은 따뜻한데도 땀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목의 편도선에도 인후염이 찾아옵니다. 평소에 피곤하거나 하면 여지없이 편도선이 붓거나 했는데 그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보리차를 데워서 보온병에 넣고 계속 음용을 합니다. 물의 목 넘김은 어느 정도 진정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1시 정도 되어 점심식사를 하라고 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마라"가 집안 모토이기도 해서 일요일 점심식사는 보통 안 하는데 약 먹는다는 핑계 삼아 혼자 식사를 합니다. 김치찌개랑 총각김치, 두부 요리 등이 차려져 있습니다. 밥을 한술 뜨고 반찬으로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김치를 입안에 넣는 순간, 강한 고춧가루 자극에 기침을 하고 난리가 아닙니다. 병원에서 3일간 자극성 없는 반찬만 먹었다고 이렇게 반응하는 것인가? 물을 마시고 한참을 진정시킨 후에 조심스럽게 작은 김치 조각을 입에 넣었습니다. 역시 메워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식성이 변한 것일까요? 와이프가 식사를 전복죽과 백김치로 바꿔줍니다. 간신히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

몸 컨디션은 점심식사 후에도 큰 차도가 없습니다. 으슬으슬한 것이 계속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니고 참 애매한 상태입니다. 약발에서 벗어나 스스로 적응하고 있는 상태로 해석을 해야겠습니다.


몸 상태도 그렇지만 머리 감고 샤워하는 게 제일 필요한데 목을 수술한 터라 수술부위를 젖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인지라 샤워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누워있으면 아들 녀석이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하는데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 같고 동네 미용실에 가서 머리만 감겨달라고 할까라고도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결국은 수술부위를 비닐랩으로 감싸고 주변에 테이프를 붙인 다음에 머리 감고 세수하고 수건으로 닦고 가슴 부위 아래쪽은 샤워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시행을 했습니다. 나눠서 씻는다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상큼하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참 병원에 4일을 갇혀 누워있느라 변비가 왔습니다. 평생 아침이면 어김없이 화장실에서 밀어내기를 해왔는데 4일 동안 한 번도 화장실에서 해결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처럼 변기에 앉아있어서 장 운동이 안돼서 그런지 전혀 기미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하루 금식하고 죽도 반밖에 안 먹고 해서 들어있는 것이 없긴 하겠지만 4일이 지나도록 배변을 못한다는 것이 병원에 있는 동안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습니다. 매번 소변을 보러 갈 때마다 여자처럼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며 배변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집에 돌아오니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똥 싸는데도 장소를 가리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퇴원한 지 하루가 지난 지금, 몸 컨디션은 괜찮습니다. 수술한 목이라 침을 삼키거나 하면 불편한 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5cm 작은 자국을 내긴 했지만 째고 드러내고 다시 꿰맨 터라 심하게 움직이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당분간 삼가라는 주치의 선생님 조언에 따라 가벼운 체조와 걷기로 운동을 대신하려 합니다. 땀날 정도로 뛰지 않으면 운동도 아니라는 철칙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나가야지요.


그래서 산책을 나가볼 참입니다. 나뭇잎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이 있겠지만 그 또한 자연의 시간 앞에 순응하는 모습일 테니 아름답게 받아들여질게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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