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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7. 2021

매운걸 못 먹게 바뀐 것일까?

갑상선암 수술로 인한 호르몬 변화일까?

갑상선암 수술 후 퇴원한 지 이틀째. 아직 매운맛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퇴원 후 만난 사제 식사 횟수는 오늘 아침까지 6끼째. 매 식사마다 김치 먹기 시도를 해본다. 번번이 실패다. 어째서일까?


김치만이 아니다. 총각김치며 심지어 고추장까지, 고춧가루가 들어간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틀 전 오전 퇴원하여 첫 점심식사 테이블을 받고 나니 3일 동안 먹지 못했던 김치찌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밥 반 숟가락에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는 순간, 온몸이 반응한다. 거부반응이다. 기침을 하고 난리도 아니다. 목을 수술해서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걷잡을 수 없는 기침에 갇혀 버린다. 마치 기도로 음식물이 잘못 들어갔을 때 나오는 기침과 같은 형국이다. 물을 계속 마시며 자제시키기를 한참 만에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김치찌개에 있던 김치 한 조각에 이렇게 온몸이 반응하는 게 너무 당혹스럽다. 3일간 병원에서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과 죽으로 식사를 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김치 한 조각에 반항하듯 기침을 하며 거부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한 끼로 끝날 줄 알았다.


김치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서 반응하는 감각 수용체의 움직임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애매하다. 매운 고추를 씹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매운 기운과는 또 다른 그런 기분이다. 그렇다고 입안이 화끈거리고 하는 통증으로 분류하기에도 애매하다. 기침을 해서 입에 들어온 물질을 뱉어 내는 신체기능이야 이해할 수 있다고 치지만 입안 미뢰 세포 사이에 있는 통증 세포들의 반응이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고춧가루의 캅사이신(capsaicin) 성분에 과민 반응하는 증상 같았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님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데이브드 줄리어스, 아뎀 파티푸티언)들이 연구로 밝혀냈다. 매운맛을 감지하는 건 혀의 미각세포가 아니라 통각 세포다. 매운맛을 내는 고추 속 캅사이신이 혀의 통점을 자극하면 온도 수용체(TRPV1)가 감지해 위기가 발생했다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TRPV1은 43도 이상의 고온을 감각하는 고온 감각 수용체다. 이 TRPV1 수용체가 바로 매운맛을 내는 고추의 캅사이신과 마늘의 알리신, 후추의 피페린 등을 감지해 이들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매우 뜨겁고 위험한 신호로 인식한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고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나는 캅사이신에만 반응한다. 이틀 동안 마늘과 후추가 들어간 음식도 조심스럽게 먹어봤다. 마늘과 후추에는 반응이 전혀 없다. 이건 또 다른 반응이다. 온도 수용체가 자극 원인물을 구분한다는 것인가? 혼란스럽다.

나는 갑상선암 수술로 갑상선 한쪽을 적출했다. 당연히 수술 전과는 다르게 갑상선 호르몬 분비량이 반으로 줄었을 테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수술 후에 갑상선 호르몬제 알약 1알을 매일 아침 식사 전에 먹고 있다. 이제 겨우 수술 끝나고 퇴원한 지 이틀 지났는데 신체 기능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에는 이르긴 하다.


다만 매운맛에 대한 신체적 거부 반응에 대한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이기에 세밀히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오늘 아침 식사에도 김치 먹기 시도를 해봤다. 일단 밥과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반찬 위주로 몇 숟가락 떠서 음식물 섭취에 입안을 적응시킨 뒤 조심스럽게 김치를 아주 작게 자르고 고춧가루를 다 제거한 후 입에 넣었다. 몇 번 씹으니 고춧가루가 직접 닿지 않아서 그런지 크게 반응을 하지는 않지만 온도 수용체가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는 있다. 이번에는 김치에서 고춧가루를 제거하지 않은 조각을 골라 밥과 함께 입에 넣고 씹어본다. 바로 반응한다. 입안이 얼얼해진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렇다고 매운 고추를 씹었을 때의 감각과는 다르다. 재빨리 목 넘김을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런대로 버틸만하다. 기침까지는 안 한다. 6번에 걸친 적응 시도를 해서 그런가?


아닐지도 모른다. 퇴원 직후라 너무 예민하게 신체 기능을 살피고 있어서 벌어지는 과민반응일 수 도 있다. 며칠 더 지나도록 상황을 주시해가며 살펴야 할 일이다. 예전처럼 입맛이 없을 때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갈 때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매운 음식이나 짠 음식을 최소화하는 것도 방법일 거란 생각이다. 굳이 몸이 거부하는데 일부로 적응과정까지 겪어가며 매운맛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 말이다.


갑상선암 수술 후 퇴원을 계기로 몸의 체질도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체질을 바꾸는 것이 뭐 별거 있겠나. 먹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작지만 암이라는 존재가 생겼었다면 그 또한 섭식도 일정 부분 차지했을 것이 틀림없을 터다. 먹는 것을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이번 증상의 진행상태를 지켜보며 적용해보기로 한다. 지금은 그저 입안의 세포들이 반응하는 정도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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