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Dec 13. 2021

묘서동처, 해석을 달리한다면?

오죽하면 고양이와 쥐가 뜻을 같이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석하고 싶을까?

대학교수들이 매년 연말이면 선정하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올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를 뽑았습니다. '고양이와 쥐가 한 곳에 있다'라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을 비유할 때 인용됩니다. 어떤 상황 때문에 이 사자성어가 선정되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매년 연말, 한 해를 정리하면서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단어는, 한자에 약한 세대들에게는 '뭥미?'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한자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의미 전달 능력으로 표현되면, 1년을 압축하여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됨이 신기하지만 한자의 뜻을 재해석하여 의미를 깨닫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으면 소외받는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도 대한민국의 1년을 바라본 교수집단의 인식체계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사회는 우리 사회 지식인 집단의 정점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집단이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인이 갖는 오류도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매년 선정되는 사자성어 발표를 보면서 느끼게 됨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중에 긍정적인 단어가 선정되었던 적이 있던가를 되돌아보면 제 기억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암울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망가져 있는 사회일까요?  작년 2020년에는 아시타비(我是他非 ;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2019년에는 공명지조(共命之鳥 ; 목숨을 함께하는 새), 2018년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 ; 짐은 무거운 데 갈 길은 멀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 ; 사악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니 백성이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가 선정되었습니다. 

대부분 정치와 관련되어 벌어지는 사회 현상이 투영된 사자성어입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모두 정치로 인하여 발하고 흥하고 망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사회가 바른 길로 잘 가도록 가이드를 만들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힘을 모으는 정치는 사회의 전면으로 등장하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사회를 떠받치고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군림(君臨 ; 세력으로 남을 압도하다) 하기보다는 군림(群琳 ; 함께 아름답게 어울리다) 해야 합니다. 조화와 융합과 타협이 공존하지 않으면 자기 것만 주장하고 자기 것만 맞다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한자성어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아직도 아집과 편견이 판을 치고, 조화는 강 건너 불구경이 되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대하는 인식 자체도 어쩌면 이렇게 정치권에 따라 다르게 보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바이러스가 정당과 사상의 색깔에 따라 감염 수준을 달리 하나요? 바이러스는 정당의 색깔을 가리지 않습니다. 숙주로써 역할을 할 것 같으면 무조건 달라붙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내 편, 네 편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함께 대처하고 대응해야 할 상대입니다. 팬데믹 상황을 자기 입지를 높이는 쪽으로 몰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좀 더 빨리 감염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론에 집중하고 합심을 해야 합니다. 


묘서동처의 묘가 여가 되고 서가 야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한자라는 것은 어떻게 주석을 다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으니 묘서동처를 "여와 야가 함께 같은 뜻으로 한 곳에 뭉친다"라고 해석을 해버리면 어떨까요? 망상이 되어버릴까요? 긍정 사회에 대한 열망이 왜곡을 불러온 걸까요?


오죽하면 이렇게라도 해석하고 싶겠습니까?

작가의 이전글 질은 양에서 나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