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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4. 2021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지? 잘 산다는 기준은 뭔가? 돈 많이 벌면 행복한 건가? 그럼 행복은 뭐지? 공부를 잘하면 행복한 건가? 살면서 계속 질문을 던진다. 던지게 된다. 던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는 것이니까.


하지만 질문을 잘못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건가"를 묻는 게 맞는 질문인가 말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행동을 하기 위한 예열 과정이다. 물어야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지고 행동으로 옮기고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문을 잘못하면?


물을 필요도 없다. 잘못된 행동을 가져오고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엉뚱한 목적지로 가게 된다. 아예 묻지도 않고 멍하게 세월을 살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국 질문의 힘이다. 잘 물어야 한다. 


질문은 욕망을 묻는 행위다. "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고 싶다는 욕망은 당연히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해보지 않았기에 도전하고 싶고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중독의 중추에 따라 끊지 못하고 피우게 되는 담배와 같이 욕망이 반복되는 행위들도 있지만 열외로 치자. 그렇다면 최종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욕망을 일으킬 수 있을까?"를 물으면 된다.


욕망(欲望)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바로 간절하고 절박한 욕망,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고,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절실하다면 그것에 매진하면 된다. 절실하지 않았기에, 대충 살아졌기에, 그저 대충 돈 벌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 시간 때우는데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제 조금 늦은 시간, 전철로 퇴근하는 길에 전철 칸에 덧신을 파는 행상 한 분이 들어섰다. 머릿결에 흰색이 많이 보이고 외견상 풍채로 보건대 60대 후반은 되어 보이셨다. 전절칸에 사람이 간혹 서 있는 정도의 혼잡 도라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인데 물건을 들고 그저 전철 칸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물론 전철 칸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 자체가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어차피 작심하고 물건을 팔려고 들어섰다면 큰 소리로 어떤 물건인지 소개를 하고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신을 수 있는 덧신 양말이라고 알려줘야 혹시나하고 쳐다보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아! 저 양반이 이 판매 전선에 처음 나선 초보였구나"라는 생각이 딱 들 정도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전철 칸에서 물건을 팔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자존심 상했으면 물건 사달라고 한 마디 못하고 들고만 다녔을까? 만감이 교차하지만 일견 화도 은근히 났다. 왜 지금 팔고 있는 물건이 좋은 거라고 큰소리로 알려주지 않는 건지? 소란 행위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은 어차피 전제되어 있는 조건인데 과감히 좋은 물건 사달라고 하지 않는 건지 말이다.


조금 더 절실하고 조금 더 간절했어야 했다. 그래야 뻔뻔해지고 과감해지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다. 절실한 욕망은 바로 밑바닥에 서봐야 끓어오르게 된다. 이 역시 바닥에서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줄을 잘 서야 한다. 멘토를 잘 만나야 한다. 먼저 행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기만 해도 그 그늘에서 땡볕을 피할 수 있다. 선임자를 따라가다 보면 "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 "해야 한다"로 도약할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이 비 올 때까지 끝까지 하면 된다.


세상사는 일은 참으로 그러한 일이다. 세계적 이론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도 "study hard. be patient. step by step"하라고 했다. 세상사는 일은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녹녹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훈련하고 공부하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 삶에 기적은 없다.


너무 비관적이고 질문조차 안 하게 된다고? 아니다. 질문을 제대로 던져 욕망을 끄집어내면 활화산 폭발하듯 매진하고 싶은 일들이 보이고, 해야 하고 해내야 한다는 힘이 생기게 된다. 일단 질문을 가다듬어보자.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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