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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5. 2022

시간 활용법

아침 출근길. 환승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는데 좌석에 여유가 여럿 있습니다. 출입문이 여닫힐 때마다 찬바람이 들어오니 좌석 중간쯤에 빈 좌석에 앉습니다. 환승역이라 빈 좌석은 금방 차 버립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려다가 멈짓합니다. 앞 좌석에 앉은 7명이 모두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합니다. 시청역에 내릴 때까지 앞자리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앞 좌석 사람들은 휴대폰 속의 어떤 영상을 보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표정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마스크라도 안 썼으면 대충 표정을 통해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지 눈치라도 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옆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로 시선을 옮깁니다. 양옆에 앉은 사람도 영락없이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길을 좌측으로 돌리니 흰색 패딩을 입은 여성분인데 몽골 분이시군요. 휴대폰 속에도 몽골어로 된 SNS 아이콘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계속 몽골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도 시선은 휴대폰 속의 몽골어 콘텐츠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제 오른쪽 좌석에 앉은 사람은 남자분이신데 대강 40대는 넘어 보이십니다. 휴대폰 속에는 게임 영상이 정신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게임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어 휴대폰 위의 양쪽 엄지 손가락은 정신없이 움직입니다. 참 재미나게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10여분 정도의 짧은 전철안 풍경이지만 다들 각자의 시선과 관심으로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에게는 모든 행위들이 이유가 있고 타당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속 온라인 게임에 열중할지언정,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어지러웠던 정신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그 또한 그 사람에게는 최고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나의 잣대로 경중을 따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지켜볼 일입니다.

오늘처럼 가끔 내가 쓰고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관조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일 테지만 들여다본 시간의 길이는 다르게 평가를 받습니다. 그 시간의 길이는 내가 생각하고 깨달은 범위 내에서 존재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스코프를 넓히면 시간은 그만큼 길어집니다. 카를로 로벨리가 말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처럼 시간은 연속이 아니고 점으로 흩뿌려진 입자로 다가옵니다. 기억의 순간순간이 모여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지만 그 끊긴 시간을 구슬처럼 엮어내야 사건으로 과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결국 나의 범위를 키우고 넓히는 일이 나의 존재를 확정 짓는 일입을 알게 됩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건과 상황을 접하는 이유도 모두 이렇게 나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며 새로운 공부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일도 호기심을 충족하여 내면의 지식을 쌓는 일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찾아가는 과정이 나의 삶을 구성하고 인도하는 안내견이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의 이치를 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게을러지지 않기를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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