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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3. 2022

눈물 날 것 같아 끝까지 듣지 못하는 노래

노래를 듣다가 끝까지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있다. 귀에 익지 않아서, 가사가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노래를 더 들으면 눈물이 더 날 것 같아서다. "에이 그냥 끝까지 듣고 확 울어버리지!"라고 할 수 도 있는데 ---

하지만 세상 사는 게 어디 그런가? 눈물을 함부로 훔치고 싶지 않은 것이 남자 아니던가?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한 노래는 딱 2곡이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꽃구경'과 '찔레꽃'이다. 또 한 곡이 있긴 하지만 그 노래는 끝까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가끔 집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하는데 중간쯤 부르다 목이 잠기게 하는 곡이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곡의 사연이나 음조, 가사의 울림이 있는 노래들이 어디 한 두 곡이겠는가? 팝송에도 수없이 많은 곡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할 테지만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바로 언어가 생각을 만들고 감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노래의 구성진 곡조가 심금을 울릴 수 도 있지만 노래 가사와 같이 와닿아야 진정으로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의 경우만 해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4살짜리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고통과 그리움이 배어있는 곡이다. 노래의 절절함을 이야기하면 이 노래만큼 애절한 것이 있을까? 눈물 없이는 절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절절함이 와닿지 않는다. 왜? 영어 가사가 주는 감정이 나의 느낌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저 듣기 좋은 발라드풍의 곡조만이 들려올 뿐이다. 얼마나 생뚱맞은가? 같은 노래인데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니 ---


하지만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노래는 애릭 클랩튼과는 다르다. 한국인의 감정과 정서를 후벼 파서 끌어내 기어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끝까지 들어보지 못하는 노래로 만들어버린다.


어제 이어령 선생님의 영결식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수많은 추도사들이 언론을 장식하며 애도를 표했다. 이 시대의 지혜자께서 운명하신데 대한 마땅한 존경의 표시다. 영면하시길 빈다. 수많은 추도의 글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다. 조선일보 김지수 문화전문기자가 쓴 "이어령의 마지막 말들"이라는 기사다. 그 기사 중에 "장사익 선생이 한밤중에 이어령 선생님을 찾아와 머리맡에서 노래를 불러주셨다"는 내용이 있다. 

한밤중에 찾아와 이어령 선생님 손을 붙잡고 노래하는 장사익 / 조선비즈 기사 사진.

"깜깜한 밤중이었네. 내가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 하고 봤더니 노래하는 장사익이야. 그이가 집에서 쓰던 기계를 다 챙겨 와서 내 앞에서 노래를 불러줬다네. 1인 콘서트를 한 거야.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 한 곡이 끝나고 또 한 곡 ---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 너무나 애절했어. 너무나 아름다웠지.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계속됐으면 좋겠어"


우리 시대의 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본 것 같아 덜컹 눈물이 났다. 그렇잖아도 '찔레꽃' 노래는 내가 끝까지 듣지 못하는 곡이었는데 이렇게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다시 초두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


곧 찔레꽃 피는 계절이 눈앞에 와있는데, 하얀 꽃 만발한 논두렁에 모내기할 때가 되었는데 ---


오늘도 검색창에 '찔레꽃'만 써놓고 만지작 거리기만 한다. 결국 듣지 못할 테지만 다 들은 거나 진배없다. 이미 울었으니까.




ㅇ "너무 아름다웠어요. 고마웠어요" 이어령의 마지막 말들 (조선비즈 / 2022.2.28) https://biz.chosun.com/notice/people_2/2022/02/28/LA2BLZ2OMVESPPIMHMKKLYI7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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