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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4. 2022

자식에게 직업을 물려줄 것인가? 직장을 물려줄 것인가?

자식이 어떤 직업을 갖길 원하는가? 자기가 평생 해오던 직업을 자식들도 이어서 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직업. 밥벌이다. 일을 해서 먹고사는데 어떤 일을 하느냐다. 너무 자조적인 정의일까? 고상하게 말해서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말한다. 더 고상하게 '자아의 실존을 유지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근원적인 일련의 경제 행위'로 직업을 정의해볼 수 도 있겠으나 집어치우자. 직업의 근본은 돈을 벌어 굶지 않고 밥 먹고 살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어서 전개될 관점이 확 바뀔 테지만 오늘은 원초적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자식들도 하기를 바라는가 말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의 경중에 따라 자식들의 직업을 바라는 부모의 심경이 담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이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이어받아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 현상은 자기 사업으로 성공을 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졸부들이 자기가 이루어놓은 사업체에 자식 및 손자들까지 줄줄이 불러들여 앉혀놓는 것을 보면 시선이 달라질 수 도 있다. 


대를 이어 가업에 충실한 가문도 있다. 이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다. 부모 밑에서 평생 보고 배우고 익혀야 겨우 따라 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어서 타인들은 감히 손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부모세대가 자식들에게 하라고 권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식들이 부모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 하고자 했기 때문에 가능한 전승이다.


이렇게 기술을 요하는 직업의 대물림 외에 남의 회사에 월급쟁이로 일하는 대부분의 군상 중에서 자식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똑같이 했으면 하는 부모는 아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왜 그럴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그럴까? 아닐 것이다. 평생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모든 애환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았다는 회고로 인하여 자식들까지 그 애환을 겪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돈 받고 사는 모든 월급쟁이 직업 중에 울어보지 않은 사람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말이다.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없이 자존심을 짓밟혀봤고 울음을 삼켜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들의 직업은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지원하는 쪽에 충실해진다. 간혹 부모들이 선망하고 동경하던, 아니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도록 독려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은 겪어보면 알게 된다. 결국 자식들의 선택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직업을 갖게 만든다.


사람들은 직업과 직장의 개념을 섞어 써서 혼동한다. 직업은 말 그대로 업이다. 내가 평생 하고 있는 일이다. 직장은 장소다. 내 직업을 행하고 있는 장소다. 직업이 바뀌는 경우보다 직장이 바뀌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평생직장보다 평생 직업을 택해야 한다. 노는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 직장은 노는 물이 아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웅덩이 정도일 따름이다. 직업은 우물이다. 계속 깊이 파내려 가야 마르지 않고 시원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것과 같다.


좋은 직업이 좋은 직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어디서 일하느냐가 보나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함은 불문가지다. 자식들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가? 자식이 없다고? 그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고 안심하는 것이 어떨지? 자식 있어 자식들의 직업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래 각자의 상황과 존재 위치에 따라 모든 고민이 다를 테니 각자 끙끙거리는 것이 정답 일터다. 에라이 ~~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불확실을 확실로 확인하고 싶은 끊임없는 고민과 싸우며 해결책을 하나씩 풀어내야 하는, 그러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알렉산드로스의 칼이 필요해질 때 다시 도약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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