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y 06. 2022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깨라

지식을 깊이 있게 축적하라

그럴듯하게 들린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하면 말이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영적으로 뭔가 이룬 듯하고 조용히 클래식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하지만 허깨비들의 말장난일 가능성이 높다. 할 말이 없고 행동하지 않고도 가장 그럴듯하게 뭔가 이루고 깨달은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표현의 단어 나열일 뿐이다. 속으면 안 된다. 들여다보면 사실 개뿔도 없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래서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것을 깨부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너무 현세적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당연하게 느낀다. "지금이 제일 중요하지, 지나간 과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중요할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지금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피어나는 꽃들의 향을 맡으러 자연으로 나가서 즐기는 것이 최고라고 여긴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나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지!" 이 현실감각은 빠른 적응을 가져온다.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허전하다. 무언가 빠진듯한데 무엇이 빠졌는지 모른다.


바로 정보는 많은데 실제적 지식이 얕으면 현세적이 된다. 건강지식만 해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건강상식이 떠돌아다녀 마치 모든 건강정보를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제는 대부분 자기가 의사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로 결론지어 버린다. 혈압이 높다고? 80에 120이야? 그다음은? 혈압이 130인데 어쩌라고? 그냥 조심하면 된다고? 음식 조절하고 체중 줄이는 운동 하면 된다고? 이건 정보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다음 단계의 정보와 지식을 입력해놓지 않아서 그렇다. 그저 몸에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정도의 지식은 모르는 거와 똑같다. 아니 오히려 지식의 확장에 방해만 된다. 우리 사회에 가짜 건강 상식이 그렇게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건강과 관련해 대화를 해보면 모두가 박사 수준인 듯 장황하게 운동법을 비롯하여 식이요법, 건강보조제까지 소개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럴듯한데 올바른 정보가 거의 없다. 그동안 세간에 소개되고 공개된 비타민과 건강보조식품들만 먹어도 200살은 족히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인데 아직까지 그런 소식은 없다. 계속 진행 중인 거라 더 기다려봐야 증명된다고? 에라이~~ 속지 말자.

인체는 정교한 머신이다. 일정량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마진까지 장착되어 있다. 이 마진 때문에 사람들이 혼동한다. 한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 축적된 양을 가름해내기가 쉽지 없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축적된 양이 많으니 감당해낼 수 있는 마진은 당연히 적어진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여러 신체 경고 사인들이 들어오는데 그 한계가 제각각이니 헷갈린다. 중간중간 경고 사인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인체의 한계 사인은 한 번만 한다. 한계 사인을 받는 순간, 이미 경계를 넘었다는 표시다. 되돌아가기가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정교한 머신에 맞는 실재적 지식을 쌓아야 그 한계들을 명확히 구별해내고 구분 지을 수 있다. 경계 사인을 조기에 알아내고자 측정기계들이 정밀해지고 있는 것과 같다.


길거리에 즐비한 곱창전골집 곱창구이집을 그저 입맛 다시는 먹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소화의 기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부위이며 소나 돼지에 따라 그 기능 및 역할은 다른지, 사람에게 까지 오면 또 어떻게 다른지 들여다보자. "참 힘들게 산다. 맛있게 먹으면 되지. 굳이 구워지는 곱창을 들여다보고 따져야 되니?"라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에서 항문까지 뚫린 관이라는 것, 그 뚫린 관 속에 들어온 음식물을 어떻게 분해하여 혈액을 타고 세포 끝까지 보내는지 알고 나면 우리가 그렇게 잘하는 매 순간 감사해하는 느낌을 그제야 알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깨닫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을 깨부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물은 물이 아니요. 산은 산이 아니다'도 알 수 있고 다시 '물은 물이었고 산은 산이었음'까지도 알게 된다. 지난한 일이지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근원을 들여다봐야, 대충 알고 떠들어대는 영적인 헛소리를 안 할 수 있다. 공부하자.



작가의 이전글 자식에게 직업을 물려줄 것인가? 직장을 물려줄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