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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0. 2022

옷장에 옷이 꽉 차 있어도 입을 게 없다

"옷장에 옷이 꽉 차 있어도 입을 옷이 없고, 냉장고가 꽉 차 있어도 먹을 게 없다"


이 궤변 같은 문장을 접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이것이 심리적 문제일까? 정리와 같은 현상적 문제일까? 아니면 심리적 요인과 현상적 요인의 복합 작용에 의해 드러난 문제일까? 헷갈린다. 아마 옷장은 심리적 요인이 더 강한 듯하고 냉장고는 정리 정돈을 안 한 현상적 요인이 더 큰 듯하다.


집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자. 냉동고는 말할 것도 없고 냉장실조차 새로운 반찬 그릇 하나 더 집어넣을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차 있음을 보게 된다. 날씨도 더워지고 있어 시원한 생수병이라도 넣어놓으려고 하면 무언가 하나 들어내고 그 자리에 넣어야 할 지경이다. 대부분 가정이 그럴 테지만 냉장고도 모자라 김치냉장고 하나 정도는 기본으로 구비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김치 냉장고조차 다른 반찬거리를 더 넣을 자리가 만만치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주방을 관리하는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듯하다. 왜? 대부분의 가정이 꽉 찬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냉장고 파먹기'로 버티기를 한다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시장보기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주방을 나와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장을 열어보자. 대부분 옷장에는 옷들이 빽빽이 걸려 있을 것이다. 옷걸이뿐만이 아니라 서랍장마다 가득하길 모자라 심지어 주변 바닥에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물론 계절별로 정리정돈을 잘하여 군대에서 침상 각 잡듯이 해놓은 주인장도 있을 테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지 싶다. 꽉 찬 옷장의 모습은 사실 여러 조건들이 함께 녹아있는 현장이다. 집이 좁아서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일상에 치어 계절별로 입을 옷을 제때 정리해놓지 못해서 보이는 장면의 스냅사진 일터다.

하지만 옷장이든 냉장고든, 정리 정돈을 잘해놓으면 공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냉장고의 경우 용기마다 날짜 표시를 해놓는다거나 옷장의 경우도 종류별 계절별로 분리를 해놓는다거나 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옷이야 계절을 넘어 유행을 타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신상이 주는 산뜻함은 옷을 살 수밖에 없는 유혹이다. 그래서 옷장에 수없이 많은 옷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달 초에 산 옷만 계속 입게 된다. 옷이라는 것이 한 계절 넘어가면 계속 세탁도 하고 하여 중고의 느낌이 날 수밖에 없다. 계절이 돌아와 지난해 입었던 옷을 꺼내보면 별로 입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결국 백화점으로, 아웃렛으로 가서 쇼핑을 한다. 그렇게 매번 옷장에 옷은 쌓이게 되고 매번 옷은 마음에 들지 않게 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남을 주자니 취향이 안 맞을 것 같아 주저하게 된다. 역시 옷장에 옷이 쌓여가는 이유다. 그래서 옷장사가 돈을 벌게 된다.


냉장고든 옷장이든 가끔 한 번씩이라도 대방출 날짜를 잡아보자. 특히 냉장고는 너무 믿으면 안 된다. 냉동고에 언제 넣어놨는지 날짜를 알 수 없는 소고기도 맨 뒤편에 숨어 있을 것이다. 아깝겠지만 날짜를 잘 살펴보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리자. 


옷장의 옷도 최근 2-3년 넘게 입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과감히 정리하자. 옷은 개인적 취향과 체형에 따라 입는 것이기에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쉽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하다. 처녀 때 비싸게 주고 산 명품 옷은 사실 장식용으로 옷장에 아직도 걸려 있는 경우가 있다. 이미 체형이 변해 입을 수 도 없지만 언젠가는 살을 빼서 저 옷을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 자위한다. 착각이며 환상인 줄 알면서도 그 옷이 옷장에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살을 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렇게 한번 입고 다시는 입지 못한 옷들이 옷걸이에 수없이 걸려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당근 마켓에 내놓거나 옷가지 재활용함에 넣거나 아니면 사회단체에 기부해도 된다. "얼마 주고 산 건데"하고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드레스룸의 용적이 소유의 물욕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 어쩌겠는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옷장에 옷이 가득함에도 입을 게 없었던 이유는 내 체형이 변했음을 인지하지 못해 생긴 일이며 냉장고가 가득함에도 먹을 게 없었던 이유는 먹을 게 없는 게 아니고 먹지 않았기에 생긴 부작용일 뿐이다. 


비우고 정리하면 다시 채우고 싶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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