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Sep 19. 2022

전철역 이름, 광고판 활용 문제는 없는가?

보이는 만큼만 보게 되고 본 만큼만 생각하게 되고 생각한 만큼만 행동하게 된다.


주변 환경을 뛰어넘어 생각하고 행동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즐탁의 경지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


환경에 지배되는 현상은 매일 매시간 벌어지는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도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한다. 내릴 역에 두서너 역으로 가까워지면 슬슬 하차 준비를 한다.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던 휴대폰 동영상을 끄고 어둠의 땅굴을 지나는 동안 스쳐가는 조명의 불빛을 바라보며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외부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전철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 역사로 진입을 하고 있음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의 불빛 속에 보이는 전철역 이름을 찾아 눈길이 창밖 곳곳을 헤맨다. 그리고 음성으로 전해지는 전철역 이름과 눈으로 보이는 역사의 이름을 일치시킨다. 그렇게 나의 위치 확인을 다시 한번 한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말이다. 


전철이라는 환경에 철저히 동화된 나의 존재에 대한 모습이다. 전철에서 내릴 때를 가름하는 순간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개입할 수 없다. 전철의 움직임과 나의 내림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관찰과 집중만이 존재한다.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위치를 확인해주는 '전철역 이름'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나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확인 작업에 혼선이 오고 있다. 전철역 이름이 길어졌다. 음성으로 다음 전철역을 안내하는 방송으로도 내가 알던 전철역 이름 뒤에 뭐가 더 따라붙는다. 잠시 집중하지 않으면 엉뚱한 이름의 전철역으로 오해할 수 도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경의 중앙선을 타고 오다 왕십리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한다. 시청역에서 내린다. 그런데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역에서부터 뒤에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DDP 역'이란다. 그런데 한 정거장 더 가니 을지로 4가 역인데 역시 '을지로 4가 BC카드 역'이란다. 오잉? 한 정거장 더 가니 3호선으로 환승하는 을지로 3가 역인데 '을지로 3가 신한카드 역'이란다. 이런 제길! 또 한 정거장을 더 오니 을지로입구역인데 '을지로입구 하나은행 역'이란다. 음성안내뿐만 아니라 전철역마다 이정표 표기에도 같이 명기되어 있다. 


더 웃기는 것은 을지로 3가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에서 신한카드 역임을 알리고 "IBK 기업은행으로 가시는 분은 1번 출구로 나가시라'라고 친절히 안내멘트를 한다.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을지로입구 하나은행 역'에서 또다시 IBK기업은행 출구 안내를 또 한다. 4번 출구로 나오시란다. 전철역 이름 병기 입찰에서 떨어진 IBK기업은행의 눈물겨운 마케팅 현장이다.  언제부터 2호선 전철역이 이렇게 은행들의 광고판이 되었나?


지하철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재정난으로 2016년부터 "역명 병기 사업"을 해서 그렇다. 기존 지하철역 이름에 인근 기업이나 기관 이름을 유상으로 함께 병기해서 돈을 벌겠다는 마케팅적 발상이다. 어떻게든 적자폭을 줄여보겠다는 눈물겨운 마케팅 방법이니 뭐라 하기도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매일 전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마케팅 방법에 이견을 내고 싶다. 전철역의 이름은 한번 정하면 바꾸기 쉽지 않다. 한번 정해놓으면 고유명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전철역 고유의 특징으로 각인되게 된다. 그래서 새롭게 놓이는 전철 노선이 생겨 전철역의 이름을 지을 때 지자체에서 공모를 하기도 하는 등 이름 선정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알기에 전철역 이름에 조금이라도 자기들과 관계있는 이름으로 짓고자 싸우는 광경도 목도하지 않았나?  가만히 전철 노선도를 들여다보면 웃기지도 않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 이름들이 대학 이름이 붙은 전철역들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치고 학교 이름 안 붙인 전철역이 있는가 말이다. 전철역에서 2-3Km 떨어져 있어도 어떻게든 학교 이름을 가져다 붙여 놓았다. 떼쓰고 우기면 할 수 없이 들어준 형상이 낳은 기형아들이다.


이런 싸움을 눈치챈 서울교통공사에서 아예 돈 주고 이름을 파는 꼼수를 등장시켰다. 돈 많이 낸 놈에게 이름을 주겠다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렇게 3년에 한 번씩 입찰을 하여 낙찰을 하고 있으니 돈 버는 마케팅 측면에서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올해 6월 말에도 입찰을 내놓은 50개 전철역 중 지하철 7호선 논현역이 대형 안과에 역대 최고가인 9억 원에 낙찰되었단다. 지하철 공사가 눈에 불을 켜고 '역명 병기 사업'을 할 만하다. 


하지만 '역명 병기 사업'은 업자의 시각이다. 이용자는 불편하고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마케팅 방법은 하수가 하는 기법이다. 


차라리 전철역 이름을 판매할 것이 아니라 해당 전철역 전 구역을 입찰에 응찰하는 기업에게 광고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요즘 첨단 LED 광고판도 등장하는데 전철역을 낙찰받은 기업이 온갖 아이디어로 전철역 전체를 예술적으로 장식했다면 전철역을 지날 때마다 눈에 뜨일 텐데 이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돈이 많이 든다"라고? 그렇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효과가 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도 기업들은 뛰어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온수역"과 "119 소방관들이 가기 싫어한다는 방화역" "대학도 아닌 것이 대학 인척 한다는 낙성대역" "스포츠 경기 때마다 바빠진다는 중계역" "빈 물통 들고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약수역"과 같은 우스갯소리 전철역 이름들이 더 정겹게 다가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칭찬보다 거절의 말을 잘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