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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2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역사다. 지루할 것 같은 46억 년의 시간 속에서 그저 그렇게 살아갈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이가 등장해 진화를 거듭하여 우세 종이 되었다가 다시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환이 없으면 생명의 역사는 진화의 단계를 오르지 못하고 도태되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갑자기 등장하는 혁명이 아니다. 곪을 데로 곪았거나 익을 데로 익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숙성의 과정이 있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하다.


거창하게 생명의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호모 사피엔스의 잠자는 감각과 기억과 감성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의 시발이다. 좌절이 아니고 희망의 시작이다.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다짐의 발로다. 하지만 어려움, 두려움으로부터의 전환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 명과 암으로 구성된 세상사에서 암의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작점이다. 밝음은 밝기를 더 오래 유지하고 싶음을 전제로 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적용범위는 작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짙은 어둠은 빨리 벗어나야 하는 시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적용해야 할 공간이 넓고 시간적으로는 다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채찍이다.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발적 의식이자 화들짝 깨어나고 분연히 일어서는 활력이다. 타성에 젖은 게으름을 화타(化他)하게 하는 일갈(一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문장에서 읽게 되면, 앞 내용에서 예상되는 결과와 다르거나 상반되는 내용이 뒤에 나타날 것을 알려주는 척후병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일상으로 들고 들어오면 많은 일들을 바꿀 수 있다.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굶어가면서까지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하지만 체중계의 눈금은 내려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오래된 연인이 "사랑이 식어감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문장을 이어주는 부사의 수준을 넘어 상황을 전환해주는 청량제다. 익히 이 단어가 주는 막강한 전달력을 눈치챈 시인들의 감성은 얼마나 대단한지 나태주 시인이 올해 6월 내놓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라는 시집에 실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훔쳐보자. 시인이 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가.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는 시인의 시선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정화제이자 안정제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 너나없이 

살기 힘들다. 지쳤다, 고달프다,

심지어 화가 난다고까지 말을 한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기댈 말과

부탁할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고

조금은 더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림의 까치발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날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고

봄과 가을 사계절이 있는 까닭이고

어린것들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이유이다.



추분으로 접어든 이 가을이 소소하게 차가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손잡을 사람이 옆에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전제는 농익은 감의 말랑거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며 단맛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일이다. 아직 보내고 싶지 않은 짙은 녹색의 향연을 더 누리고 싶은 소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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